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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에 대한 이해와 오해
최장집
정치외교연구센터 / 국내정치와 민주주의
외부기고
기사
경향신문
2009/07/13
■ 민주주의를 잘 하는 것이 소통을 가능케 하는 방법이지,소통에 대한 강조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은 아니다


소통이 사회적 논의의 주제가 된 데는, 이명박 정부의 권력 운영방식과 리더십 스타일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소통이라는 말이 어떻게 사용되든, “불통정부”라는 말이 지칭하듯, 그것은 소통을 거부하는 현 정부를 비판적으로 겨냥하는 것에서 출발한 것으로 이해된다. 정부가 시민들의 의견에 귀기울이지 않고, 반응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면, 소통이라는 말보다 정부가 시민들의 의견 및 여론에 귀기울이는 것을 뜻하는 “책임(성)”이라든가, “반응성”이라든가 하는 정치학적으로 보다 정확하게 정의될 수 있는 말을 쓰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렇지 않고 소통이라는 말이 현재 정치적 갈등이 양분화되고 격화되는 상황에서 사용될 때 원래의 문제의식과는 달리, 어떤 공정하고도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증진하고, 이를 통해 정치발전에 기여하기보다 의도하지 않았던 역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생긴다.

성급하게 시민을 가르치려 하는…한국 소수 언론과 지식인 엘리트

소통문제를 생각할 때, ‘누구와 누가 무슨 내용을 가지고 어떤 맥락에서 소통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의 여론 형성은 주류언론들이 압도적인 영향력과 더불어 이슈를 설정하고, 지식인들이 이 논의에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진보언론은 자주 보수언론에 대한 거울이미지로 반대 논리를 제시해왔다. 그러면서 사회의 집단적 의사형성은 냉전반공주의나 정치에 대한 도덕주의적 관점에 의해 좁게 제한된 이데올로기적 틀을 통해 만들어져 왔다. 공론장에서 논의되는 이슈들은 이렇게 정형화된 이념범주로 분류되어, 언론매체들을 통해 사회화되고 정치화되었다. 사회의 의사형성이 언론과 지식인 엘리트들에 의해 선점되고 좁게 제한된 이데올로기 범위로 한정되는 조건에서, 공공여론이 사회현실을 반영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를 이슈화하기는 쉽지 않다. 소통의 문제가 이런 맥락에서 제시될 때, 엘리트주의라는 특징과 아울러 그러한 의사형성과 여론이 사회현실로부터 크게 괴리되었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다. 민주주의가 잘 발달된 나라 같으면, 여러 사회집단들, 특히 사회적 약자, 소외세력들의 의사를 정당하게 반영하고 조직함으로써 사회적 의사가 일방적으로 지식인 엘리트와 소수 언론매체들을 통해 형성되는 것을 어느 정도는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정치 밖의 소수언론과 엘리트들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정치는 어떠해야 하고, 공익은 무엇이고, 시민이 도덕적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정치의 밖으로부터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성급하게 시민을 가르치려는 태도를 보여줄 때가 많다. 이러한 공론장의 구조에서, 소통이 강조된다고 할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정치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현재 정치적 조건에서 소통의 의미는 몇 가지 상황을 가정한다. 첫째는 사회적 의견이 적대적 양상을 보이는 두 개의 세력으로 양극화되었다. 둘째,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은 타기(唾棄)할 만한 것이고, 소통의 부재를 가져온다. 셋째,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소통은 더욱 악화되어 위기의 수준에 이르렀다. 현재 논의되는 소통문제는, 이러한 세 가지 요소가 합쳐진 것이라 하겠다.

이런 관점은 정치갈등과 경쟁이 두 개의 세력으로 양극화되었다는 이해의 방법에 기초한다. “민주 대 반민주”라는 말만큼 정치갈등이 두 개의 진영 사이에서 전개된다는 인식을 잘 표현하는 것은 없다. 이 말은 민주화운동과 그 과정에서의 격렬한 대립과 투쟁을 상징하고 당시의 정조를 불러들이는 것으로, 분명 과거 지향적이고 복고적인 성격이 강하다. 정치에 대한 이러한 이해방식은, 현실에서 발생하는 정치갈등과 민주주의 틀 안에서의 정치경쟁을 좋은 것과 나쁜 것, 도덕적인 것과 반도덕적인 것 간의 투쟁, 곧 선악개념으로 치환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집단적 열정을 동원하려고 시도한다. 일방의 진영이 자신의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대 정치연합을 강조하고 이를 미덕으로 삼는 분위기에서, 내부비판이나 생각의 차이들이 자유롭게 표출되고 여러 의사형성이 가능하고 이를 토대로 다원적인 세력형성이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선호가 강한 사람들만이 지배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적인 의사형성이란 차이를 인정하고 이들 차이 간의 합리적 경쟁을 통해 일정한 합의를 넓혀가는 과정이라 할 때, 사전에 정해진 어떤 의사, 가치를 위로부터 부과하는 것은, 무엇보다 민주주의원리와 부합하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소통이라는 말을 쓰면서 발생하는 역설적인 현상은, 그것이 개인의사든, 집단의사이든 의견, 의사의 소통을 더 자유롭게 하고 그 범위를 넓히기보다 이를 제한하고 억압하는 이데올로기 효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협애하게 제한된 좌우 스펙트럼의 틀에서 비춰지는 양극단은 나쁜 것이고, 중간이 좋다는 가치판단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결과는 중산층적 온정주의를 강화하는 것과 더불어, 그렇지 않은 여러 의사를 제약하면서 차이를 인정하는 것보다 없애는 효과를 갖는다는 것이다.

‘소통 대 불통’ 양극화 논리·담론…긍정적 현실변화 가져올지 의문

정치를 이렇게 양극화된 대립구조로 볼 때, 그것은 현실의 변화를 보기 어렵다. 그동안 세계화는 한국 사회를 전면적으로 변화시켰고, 빈부격차, 노동문제, 사회적 상향이동이 더욱 불가능해지는 사회구조 등 우리 사회가 풀어가야 할 여러 중요한 새로운 이슈가 등장했다. 투표자들의 선호 역시 크게 변했고 한나라당, 민주당 등 정당들의 사회적 기반과 정당 자체의 구조도 변했다. ‘소통 대 불통’이든 ‘민주 대 반민주’든 양극화의 논리와 담론은 이런 현실변화의 문제들을 대면하고 다루는 데 제대로 부응할 수 없다.

이처럼 소통문제가 두 개의 세력으로 양극화된 정치의 맥락에서 논의될 때, 그것이 정치발전에 어떤 긍정적 기여를 가져올지 의문이다.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가 사회의 최상층 이익만을 보장하고 서민과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며, 법의 지배와 인권보장, 권력 운영방식에서 경찰, 사법, 정보기구들이 권위주의적 양태를 보인다고 비판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오늘의 정부를 보수정부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정부를 반민주적이라고 평하게 되면, 역으로 “민주정부”라고 생각하는 앞선 정부들은 그만큼 긍정적으로 미화될 것이다. 이러한 정치에 대한 이해방식은, 소통불능을 오히려 강화하는 것이 될 것이고, 이른바 진보세력의 발전에도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과 과거 정부의 잘잘못을 평가하는 문제가 동일한 것일 수는 없다. 과거 이른바 진보적인 정부들 역시, 경제와 사회정책에서 신자유주의 성장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로 서민과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은 나빠졌고, 국가의 사법, 경찰기구들은 충분히 민주화되지 못했다. 또 소통이 잘 안 되었던 것은 그때도 비슷했다.

양극화 비전에 입각한 신문의 논조는, 민주화 과정에서 무엇이 잘못되었고 부족했던가를 이념적 스펙트럼을 가로질러 객관적으로 보고,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배우는 일을 어렵게 한다. 야당(들)은 여당의 실패를 통해 집권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과 노동, 분배를 결합해 보수정당보다 우월한 대안적 성장정책을 가질 때 집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위로부터 만들어진 최대 민주연합을 강요하는 담론과 운동을 통해 그동안 표출될 수 없었던 사회적 약자의 소리나 여러 사회집단의 의사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다원적 토대 위에서 이를 결집하는 방식으로 다수를 형성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통은 공익, 정의, 도덕적이라는 말과 같이 좋은 말이다. 그러나 좋은 말은 캠페인 같은 방식으로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실현될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조건이 성숙되는 과정을 통해 결과적으로 실현되는 현상이다. 민주정치에서 소통은 투표에서 다수의 평결을 통해 소통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소통하도록 강제되는 조건의 함수로 이해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잘하는 것이 소통을 가능케 하는 방법이지, 소통에 대한 강조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은 아니다.

<최장집 | 고려대 명예교수>
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7131743455&code=210000&s_code=af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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