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망법 44조의 7은 세계에서 유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법이다. 이 법은 행정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가 인터넷에 게시된 표현물들을 광범위한 사유로 삭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들에서는 행정기관에 의한 표현물의 내용에 대한 규제는 ‘사전검열’로 여겨져 금지된다. 행정기관은 권력자의 영향력하에 있어 권력에 비판적인 합법적인 표현물들을 위법한 것으로 몰아 제재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선진국들 중에서 행정기관이 인터넷 콘텐츠 심의를 하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오스트레일리아뿐인데 오스트레일리아는 음란물 및 아동유해물만을 걸러낸다.
우리나라는 44조의 7에 따라 ‘명예훼손’ 정보나 ‘범죄를 목적으로 하거나 교사 방조하는 정보’까지 방통심의위가 걸러낸다. 언뜻 당연해 보이지만, 이렇게 광범위한 심의가 행정기관에 의해 이루어지면 합법적인 표현물이 정치적인 이유로 제재될 위험이 너무 높아 외국에서는 제도 자체가 위헌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 위험은 방통심의위가 지난해 7월 친정부 언론의 광고주들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던 다음카페 게시물을 삭제토록 하면서 확인되었고 지난주에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지난 1월2일 김문수 지사는 “만약 우리 대한민국이 일제 식민지가 안 됐다면 …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과연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었을까?”라고 발언하였다. 이에 다음 아고라-이슈청원 사이트에 김 지사의 위 발언을 그대로 게재하고 “망국적인 발언을 규탄한다”며 김 지사의 사퇴를 요구하는 게시판이 만들어졌다. 김 지사는 방통심의위에 위 게시판이 명예훼손이라며 심의를 요청하였고 한나라당과 정부가 임명한 교수들이 과반수를 점하고 있는 방통심의위는 삭제결정을 내렸고 다음은 곧바로 이를 삭제하였다.
그러나 공인이 한 말을 문자 그대로 게재한 위 게시판은 어떤 법해석하에서도 명예훼손이 될 수 없다. 실제로 김 지사는 위 발언을 똑같이 소개한 수많은 언론보도들에 대해 ‘위기를 극복한 대한민국은 위대하다’는 자신의 본 취지를 왜곡하였다고 주장하였을 뿐 이렇듯 삭제요청을 하지는 않았다. 아고라 청원만을 문제 삼은 이유는 ‘망국적 발언’ ‘사퇴’ 등의 의견을 곁들였다는 것과 다른 누리꾼들이 댓글로 찬성 또는 반대 표시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인데 이러한 의견의 표명은 확립된 대법원 판결에 따라도 절대로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다.
도의적으로도 김 지사의 발언은 자신의 본 취지와 다르게 이해될 수도 있었고 국민은 그런 오해의 가능성을 이유로 ‘망국적’이라고 평가할 권리가 있다. 그렇다면 방통심의위는 결국 공인에 대해 진실을 유포한 것에 대해 위법 판단을 내린 것이 된다.
‘진실유포죄’까지 만들어내는 이런 사례에서 보듯이 어떤 제도는 아무리 좋은 사람이 운영하려고 해도 좋게 운영되지 않는다. 표현물에 대한 행정심의제도 자체가 다른 선진국들에서 폐기된 이유이다. 당장 제도 전체를 폐지하지 못한다면 최소한 고위 공무원이 자신에게 비판적인 국민들의 입을 막아달라고 다른 공무원들에게 요청하는 만행은 끝나야 한다.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문화방송>(MBC)에 대한 광우병 보도가 자신의 평판에 영향을 준다고 동료 행정기관인 검찰에 ‘피디수첩’의 형사처벌을 요청한 것만큼 치졸한 것이다. 방통심의위가 자체적으로 고위 공무원들의 명예훼손에 대한 심의 요청을 거부할 것을 요구한다. 작년 7월 방통심의위의 경솔한 삭제권고가 사람들의 구속으로 이어진 것을 잊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