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6일 북 외무성이 대변인 성명으로 ‘불능화 조치 중단’과 ‘영변핵시설 원상복구 고려’를 핵심으로 하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북측의 입장은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 미국의 검증요구를 거부하고 ▶ 미국에게 즉각적인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촉구하며 ▶ 6자회담 불참을 시사하고 ▶ 불능화작업을 이미 중지했으며 ▶ 사태 전개에 따라 영변핵시설을 원상복구할 수 있다는 것이 요지이다.
만약 북측이 예고한 대로 사태가 진전된다면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영변핵시설 원상복구는 10.3 합의의 무효화를 의미한다. 이는 곧 9.19 공동성명의 무력화와 6자회담의 파탄으로 귀결될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6자회담이 시작되었던 2003년 이후 5년이 넘는 시간과 9.19 공동성명, 2.13 합의, 10.3 합의 등 외교적 성과가 모두 수포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한반도는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다.
북미 양측의 입장이 현재와 같이 평행선을 달리게 된다면 북측은 예고한 대로 영변 핵시설을 복구시킬 것이며, 그에 대해 미국 등 주변국의 대응이 강력해진다면 북은 더 강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즉 플루토늄 재처리나 핵무기화 등의 조치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 극단적인 북미간의 대결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이와 같은 사태 전개 가능성에 대해 강력한 우려를 표명하며 조속히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가 정상화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의 책임은 미국에게 있다.
북측의 핵신고서 제출에 맞춰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는 것은 행동 대 행동 원칙에 입각한 미국의 의무사항이었다. 미 의회가 아무런 반대 입장을 표명하지 않음으로써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위한 법적 장애물은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약속은 지키지 않은 채 9.19 성명, 10.3 합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국제적 기준’을 거론하며 핵시료 채취, 불시방문, 미신고시설 검증 등 일방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 이는 6자회담의 판을 깨겠다는 경고에 다름 아니며 대북적대정책의 재추진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미국 뿐 아니라 중국 및 한국 등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 역시 책임이 없지 않다. 우선 중국은 ‘분리검증안’을 미국측에 제안했고 그같은 안으로 중재를 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비록 수위는 다르지만 미국의 일방적 검증 요구를 중국이 수용한 것이다. ‘정직한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중국이 ‘불공정한 중재자’ 입장을 취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일방적 검증’을 강요하는 미국측과 공조하여 북측에 ‘검증 압박’을 넣고 있으며 일본과도 협력하여 대북 압박을 강화해 왔다. 부시 행정부마저 포기했던 선핵포기 논리를 ‘비핵개방 3000’ 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일방적 대북 핵포기’를 종용해 왔다.
6자회담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한반도 절대절명의 과제이다. 6자회담이 파탄나고 한반도 비핵화가 무산된다면 가장 큰 피해자는 우리 한반도와 우리 민족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태 악화를 막는 것이 최선의 과제이다. 만약 이번 사태가 악화되어 파국으로 치닫는다면 6자회담 자체가 파탄나는 것은 물론이요 북미 대결은 걷잡을 수 없게 악화될 것이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것이다.
사태악화 방지와 문제 해결을 위해서 민주노동당은 아래와 같이 요구한다.
첫째, 미국은 테러지원국 지정을 즉시 해제해야 한다. 모든 법적·행정적 절차는 이미 완료되었다. 행정부 차원의 해제 발표만 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문제가 더 이상 북미 간의 공방이 되거나 한반도 비핵화 과정의 진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합의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일방적 검증’ 요구를 즉각 철회하고 10.3 합의와 7월 6자 수석대표 합의에 기초하여 검증기구과 감시체계를 내오는데 협력해야 한다. ‘일방적 검증’ 요구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이후 사태 악화의 모든 책임은 미국에게 돌아갈 것이다.
둘째, 북측은 좀 더 인내심을 갖고 미국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 북측이 예고한 영변핵시설 원상복구는 6자회담의 파탄을 의미하며 한반도 비핵화 실현의 실패를 의미한다. 북측 역시 이같은 상황을 원치 않을 것이기에 좀 더 신중한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주변국들의 역할 역시 막중하다. 특히 한국과 중국은 그동안 ‘중재자’로 자임하며 6자회담에 임해왔다. 그러나 최근 한국과 중국 모두 미국의 ‘일방적 검증 요구’에 편중된 입장을 갖고 ‘중재’를 시도하고 있다. 이같은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10.3 합의와 7월 수석대표 합의에 기초한 ‘객관적 중재’를 모색했을 때 6자회담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