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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정책’은 러시아 ‘제국’의 운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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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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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연구센터 / 한반도와 러시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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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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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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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디플로마티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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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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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북극곰’이 마침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세계 1,2위를 다투는 에너지자원을 배경으로 세계지도를 다시 그리려 하는 러시아. 그들의 해법은 ‘동방’이다. 중국, 인도와 손잡고 내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며, 외로운 북한을 두둔해 동북아에서 힘의 균형을 도모한다. 러시아의 ‘동방 포섭’이 겨냥하는 바는 미국 ‘일극체제’의 대전환. 바야흐로 러시아와 미국 간에 유라시아의 미래를 건 ‘새로운 대게임’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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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국가로서의 운명이기도 하겠지만 러시아가 ‘제국’의 길을 걸어온 이래 ‘동방’과 ‘서방’ 간의 균형 문제는 러시아의 대외정책의 전략적 기조를 이루어 왔다. 유럽문명의 상속자이면서도 유럽문명의 이방인으로 간주되는 러시아는 19세기 역사철학자 헤르쩬의 표현대로 유럽과의 관계를 ‘배신의 역사’(1)로 기억하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크리미아전쟁을 일컬어 “러시아 예수, 십자가에 못 박히다”(2) 라고 묘사하면서 동방이 러시아의 운명이라고 설파했다. 동방은 러시아에게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 되었다.
러시아는 근본적으로 유럽국가였지만 제국으로서의 운명은 동방에서 결정되었다. 이른바 ‘대게임(the Great Game)’으로 명명되는 (중앙)아시아에서의 영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충돌이 그 시작이다. 19세기 중반 크리미아전쟁의 대패로 대유럽정책의 한계를 경험한 러시아가 19세기 후반 중앙아시아와 극동정책을 본격화 하여 유라시아제국으로서 영토적 완결성과 ‘세력권(sphere of influence)’을 완성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듯이, 20세기말 서방정책의 전반적 딜레마를 상쇄하고 강대국(제국)으로의 부활을 위해 선택한 것이 동방정책이다.
탈냉전 초기 미국이 러시아에 ‘평화를 위한 동반자관계(PEP)’ 수립을 제안할 당시, 러시아는 미국과 더불어 신세기를 향한 ‘글로벌 콘도미니엄’의 설계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낭만적인 기대감에 차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미국이 러시아를 배제한 범대서양동맹의 팽창을 결정했을 때 러시아는 이러한 NATO의 동진정책을 러시아 포위전략으로 해석했다. 러시아에게 ‘차가운 전쟁’이 해체된 후에 도래한 것은 다름아닌 ‘차가운 평화’였다. 러시아의 선택은 ‘강대국 러시아의 부활’, 그리고 ‘동방정책’이었다.
동방정책은 미국 견제와 다극체제 형성을 목표로 중국, 인도와 협력 강화를 우선순위로 하여 북한 등 과거 우호협력국들과 관계 복원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전환은 옐친 정부 시기에 수립된 기존의 한반도정책에 대한 수정을 초래하였고, 남한 일변도의 관계를 탈피하여 남북한을 넘나드는 이른바 ‘한반도 등거리외교’로 재정립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세베르스탈 그룹의 알렉세이 모르다소프 회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즈호라의 정유시설에서 파이프라인에 사인을 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유럽에선 ‘통합’, 아시아에선 ‘균형’
옐친 정부 후반 프리마코프 외무장관에 의해 시작된 동방정책이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에 대한 '대항 헤게모니 형성(counter-hegemonic formation)'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면, 푸틴 정부의 동방정책은 '전략적 균형(strategic equilibrium)'이라는 다소 수동적인 입장으로 전환되었다고 할 수 있다. 푸틴 정부의 동방정책은 '서방'과의 대립 개념으로서 '동방'이 아니라, 현실정치(realpolitik)적 측면에서 '동방'을 사고함을 의미하며, '선택적 개입(selective engagement)'을 통한 '제3의 길'의 실현을 지향하고 있다(3).
다른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정책적 자율성은 '미국의 범위' 내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유럽에서 그 역할이 '통합자'였다면 (동)아시아에서는 그보다 낮은 개념인 '균형자'로서 역할이 적합할 것으로 러시아가 판단하고 있다고 분석된다. 러시아는 '9·11'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로 인해 형성된 유럽과 미국 사이의 외교적 갭에서 '통합자(integrator in the transatlantic gap)'로서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과 협력관계 구축(4)에 힘쓰는 동시에 프랑스, 독일과의 외교적 공조(‘삼국협력’)(5)를 강화하여 미국을 견제하고 있다. 이제 더이상 러시아는 미국의 NATO 확대에 대해 과거와 같이 격렬하고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조용한 반대(calm disapproval)'라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러시아는 ‘R-NAC(Russia-North Atlantic Council)’와 '러시아-NATO정상회의'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유럽에서 나토의 이슈를 중화시키고, NATO를 군사기구적 성격에서 정치기구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푸틴의 러시아는 옐친 후반기에 비교할 때 유럽에 있어서 일정한 전략적 상승을 경험하고 있으며, 그 배경에는 미국 일방주의의 반대급부, 고유가를 기반으로 한 에너지외교, 국내경제의 호전(6)과 동방정책의 성공 등이 자리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전략적 균형’을 이루기 위해 러시아는 상하이협력기구(SCO), 러시아-중국-인도 삼각협력 구상(7), 6자회담을 유용한 틀로서 상정하고 있다. 특히 SCO와 러-중-인 삼각협력 구상은 6자회담에 비해 미국에 대한 러시아의 상대적 자율성이 비교적 큰 제도적 틀이다. SCO는 러시아, 중국, 중앙아시아 4개국에 인도, 파키스탄, 이란, 몽골 등이 옵서버로 참가하게 됨으로써 범위면에서 이른바 내륙아시아 전체로 확대되어 ‘러-중-인 협력관계’와 상호 시너지 효과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중국-인도의 삼각협력 구상은 2004~2005년에 들어오면서 대외적으로 급진전되었다. 표면적으로 ‘비동맹·비대결(non-alliance, non-confrontation)'을 표방하고 있으나 3국간의 관계가 기존의 ‘양자관계의 합’에서 ‘3자관계’로 질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2004년 12월 푸틴은 인도를 세번째로 방문하여 러-중-인 3각관계 형성을 역설하였다.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2005년 봄 인도를 방문하여 러시아-중국-인도를 ‘영향력 있는 3국'으로 표현하면서 이 3개국 간의 협력이 세계의 평화와 안정과 ‘국제관계의 민주화(다극체제 형성)’에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그루지야의 소위 ‘벨벳혁명’에 이어 2004~2005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 키르키즈스탄의 ‘튤립혁명’ 등 중앙아시아와 인근지역에서 연이은 정권변동이 발생하고 미국이 이를 지원하고 있다고 판단한 러시아는 삼각관계 구축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중국 또한 타이완 문제와 중-일 간 외교적 마찰이 최근에 가열되고 있고, 중앙아시아로 파급되고 있는 ‘민주화’라는 일련의 정치적 사태가 서부 국경의 불안정으로 비화되는 것을 염려하고 있다.
인도 또한 파키스탄 북부의 파슈툰 등지에 근거하고 있는 ‘이슬람 분리주의’ 세력과 아프간의 탈레반 잔여세력이 국제적으로 결합하여 이들의 영향력이 인도와 중앙아시아 일대로 확대되는 것을 자국 안보의 중대한 위협요인으로 상정하고 있다. 인도는 러-중-인 삼각관계가 성립될 경우 서남아시아에서 인도의 전략적 지위를 오히려 잠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우려하면서도 적당한 선에서의 삼각관계 유지가 역으로 미국과의 관계에서 유리한 레버리지로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지난 3월 미국이 NPT 미가입국인 인도와 핵협력에 동의한 사실과, 7월 북한 미사일 발사 사건의 와중에 인도의 ICBM급 미사일 실험발사를 미국이 용인한 사실 등은 인도의 이러한 전략적 판단의 결과이다.
작년 8월과 10월에 있은 러-중, 러-인 간의 대규모 군사합동훈련은 이러한 상황전개와 관련하여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동해와 서해에서 진행된 러-중 간의 사상 최초의 대규모 군사훈련은 ‘러-중-인 협력관계’가 단순히 경제협력관계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과 이것이 한반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푸틴정부 2기에 들어서면서 러시아는 아시아에서 일정한 전략적 상승을 경험하고 있다.
중국과 협력문제는 동방정책의 성공에 결정적 의미를 지닌다. 19세기말 청일전쟁 이후 러시아가 삼국간섭을 주도함으로써 형성된 러-청 동맹이 당시 러시아의 동방정책의 중요한 축이었음을 상기하면 21세기 러-중 간의 협력관계의 역사성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1997년 러시아와 중국은 국경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상호군축을 단행하기로 합의하였고, 러시아는 중국에게 타이완 문제에 협조할 뜻을 시사했다. 1999년 12월, 양국간에 국경문제가 종결되었음이 선언되었고, 2001년 7월 ‘러-중 우호협력조약’이 체결되기에 이른다. 러시아는 중국과의 일련의 정상회담을 통해 제정시기와 냉전시기를 거치면서 양국간 갈등의 중요한 부분이던 국경문제를 해결하고 미국의 ‘패권적 일극체제’에 대항하여 다극체제 수립에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합의하였다. 현재 중국과 러시아는 2006년과 2007년을 각각 ‘러시아의 해’와 ‘중국의 해’로 지정하고 정상회담을 비롯하여 각 분야의 교류협력 등 대규모 행사를 개최하고 사절단을 교환하고 있다.
러시아는 한반도에 통일국가가 수립되는 것에 대해 매우 긍정정인 인식을 갖고 있다. 러시아로서는 동북아에 중간 규모의 국가(통일한국)가 존재하는 것이 동북아 내 열강 간의 역학관계에서 자국에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러시아는 북핵문제를 ‘국제법과 주권국가’라는 두 가지 원칙에 의해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6자회담 참여의 목표는 대략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국내적 측면에서 러시아는 극동 및 시베리아 개발이라는 지역정책(regional politics)을 안정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 남북한 간의 협력관계 수립과 한반도의 안정이 필요하다. 동북아 지역적 수준으로는 6자회담 참여를 통해 러시아는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에 대한 자국의 전통적인 이해관계를 주변국들에게 확인시키는 동시에 북한과의 관계 복원을 통해 ‘신북방 삼각관계’ 형성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 한다. 세계적 수준에서 북한문제는 러시아가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를 견제하고 ‘실질적인’ 다극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선택한 ‘동방정책’의 유용한 고리 중의 하나이다.
푸틴 정부가 출범하면서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접근을 적극화 하고 있다. 2000년 이후 3년 동안 세 차례에 걸친 정상회담이 성사되었고, 사문화된 ‘조-소 우호조약(1961)’이 북-러 간의 ‘신조약’ 체결(2000)로 부활한 데 이어, ‘방위산업 및 군사장비 분야 협력협정’ 등이 체결되었다. 2001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정상회담을 통해 ‘창조적 동반자관계(creative partnership)’를 선언하였다.
러시아는 ‘통일한국’에 긍정적
금년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하여 러시아는 미국과 일본의 강력한 대북제재안에 반대하고 완화된 형태의 제재안을 중국과 함께 공동발의 하였으며,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차기 유력 대선주자로 알려진 V. 야쿠닌을 평양으로 파견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푸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한 바 있다. 러시아는 북한이 6자회담에 조속히 복귀하여 미사일과 북핵 문제 해결 방안을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되, 미국도 대북 금융제재를 해제하고 북한의 체제안보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적극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7월, 사상 처음으로 러시아-중국-인도 3개국 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 또한 지난 4월 SCO 회원국들이 내년에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올 하반기 중에 러시아-인도-중국이 모두 참여하는 ‘3국 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될 전망이다. 이러한 군사훈련이 ‘비동맹·비대결’ 원칙에 입각한 것으로 특정국가(미국)를 겨냥한 군사적 동맹의 출현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나, 효과면에서 집단안보적 목표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안보체제로 발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바야흐로 내륙 아시아를 중심으로 새로운 ‘유라시아 체스판’이 형성되고 있다. 21세기 미-러 간의 ‘새로운 대게임(the New Great Game)’이 시작되고 있다고 하면 과도한 해석일까?
(1)그에 따르면 ‘12세기 러시아가 이교도 몽골의 침입에 맞서 기독교 문명의 선두에서 피 흘리고 있을 때 기독교 형제국들은 러시아를 유린하였다.’
(2)형식상 발칸지역 기독교민족들의 독립을 명분으로 러시아가 오스만제국과 벌인 크리미아전쟁(1853~1856)에서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기독교국가들이 이교도 오스만제국을 지원하여 러시아가 대패한 것에 대해 도스토예프스키를 비롯한 일군의 지식인들은 ‘유럽의 배반’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3)Richard Sakwa는 푸틴 정부의 대외정책을 기존의 ‘동방과 서방’이라는 이분법을 탈피하고 ‘제3의 길’을 추구하는 ‘신현실주의(new realism)’로 설명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Richard Sakwa, "Putin’s Foreign Policy: Transforming ‘the East’", Russia between East and West: Russian Foreign Policy on the Threshold of the Twenty-First Century, 2004. pp.174-177 참고바람.
(4)2003년9월 미-러 정상회담 직전에 마련된 러시아의 'positioning paper'에 따르면 9·11 이후 '대서양 동맹'에 대한 러시아의 전략적 지향은 미국에 대한 협력을 통해 러시아가 미국으로부터 '비나토권의 핵심동맹(Essential Non- NATO Ally)'으로 인정받는 것에 있다.
(5)러시아-프랑스-독일 간의 이른바 ‘삼국협력’은 독일 슈뢰더 내각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친미경향의 메르켈 내각이 들어서면서 주춤한 상태이다.
(6)외환보유고 세계 4위(2006), 2000년 이후 4.7%(2002)에서 10.0%(2000)에 이르는 실질 GDP성장률, 860억 달러(2005)에 이르는 경상수지 흑자규모 등의 경제지표와, 세계 2위의 석유 생산 및 수출국, 세계 1위의 천연가스 생산 및 수출국, 세계 1위의 가스 확인매장량(전 세계 매장량의 26%) 보유 등의 에너지 보유현황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7)1996년 프리마코프 외무장관에 의해 제안되어 ‘프리마코프 트라이앵글’이라고도 불리운다.
백준기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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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lemonde.co.kr/news/view.asp?arId=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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