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브런스 사령관, 논쟁 유발

 
 브런슨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이 미국 워싱턴 D.C.에서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겨냥해 연이어 거침없는 말을 쏟아냈다. “조건이 변했고, 우리가 계획을 바꿨기 때문에 우리가 지켜야 할 새로운 기준이 생겼다.
 그는 여기에 “시간 자체가 하나의 조건이다”라는 문장을 덧붙였다.
 
 한국 정부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국방부 대변인은 “골대를 계속 옮긴다면 전작권 전환은 영원히 할 수 없다”고 맞받았다. 청와대는 브런슨 사령관의 발언이 “미국 정부 전체를 대변하는 견해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작권을 “반드시 신속히 돌려받아야 한다”고 했다. 전작권 ‘전환’이 아니라 ‘환수’라면서 이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전시작전통제권은 한반도 유사시 작전계획(작계, OPLAN)에 따라 지정된 부대의 작전을 지휘·통제하는 권한이다. 적을 감시하는 정보·감시·정찰(ISR) 자산, 부대를 연결하는 지휘통제통신(C4I) 체계, 육·해·공 합동작전 기획 능력이다. 이를 ‘기본 운영체제(OS)’라고 비유할 수 있다. 반면 안보 환경에 따라 수정되는 작전계획은 그 위에서 구동되는 ‘응용 프로그램(App)’에 해당한다. 새로운 앱이 업데이트되었다고 해서 기본 운영체제의 성능 검증을 매번 처음부터 다시 하지는 않는다.
 물론 북한의 전술핵 탑재나 고도화된 미사일 위협 같은 새로운 안보 환경은 OS 자체에 더 높은 하드웨어 사양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새 위협이 등장했다고 해서 한쪽 사령관이 워싱턴 무대에서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것은 결함을 지닐 수밖에 없다.
 전작권 전환 기준은 한미 국방장관이 참석하는 안보협의회의(SCM) 합의의 산물이다. 위협이 변해 기준을 손봐야 한다면 협의 테이블에 올려 양국이 합의할 일이다. 현장 사령관이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것은 전작권이 한미동맹에서 지니는 무게에 비춰볼 때 지나치게 가벼운 언행이다.
 위협변화 상황에 대한 대응에도 맞지 않는다. 미국이 작계를 바꾸어서 다영역 전력이나 핵 억제 전술을 포함하는 것은 현재 전작권을 행사하는 미군조차 지금 막 도입하며 보완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 미군에게는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을 허용하면서, 한국군에게만 ‘새 작계에 대한 완벽한 선제 구비’를 전작권 전환의 전제 조건으로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게 일방적이다.
 
 브런슨은 작전계획의 본질에 대해서도 현장 사령관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교묘하게 왜곡하고 있다. 작계는 적의 전술과 아군의 전력 변화에 따라 상시 수정·보완되는 유기적 문서다. 작계가 바뀔 때마다 전작권 전환을 위한 검증 기준을 원점으로 되돌린다면 전작권 전환은 구조적으로 영원히 불가능하다.
 ‘시간도 조건’이라는 주장도 군사학적 오류다. 전작권 전환은 단순히 지휘관의 국적을 바꾸는 조치가 아니다. 국가적인 국방개혁 프로젝트이다. 모든 대규모 군사전력 건설과 조직 개편은 ‘소요 역량 산출 → 준비 기간 산정 → 목표 시점(D-Day) 확정 → 연차별 예산 투입 및 검증’이라는 목표 관리(Management by Objectives) 없이는 달성할 수 없다. 군사 개혁에는 ‘목표 연도(Target Date)’가 필수적이다.
 
2. 노무현이 추진한 역량에 기반한 전작권 전환
 
 한편 브런슨 사령관의 발언은 전작권 논의에서 한국이 걸려 있는 ‘두 개의 덫’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첫 번째 덫은 ‘시기 대 조건’이라는 잘못된 이분법이다. 박근혜 정부는 과거 노무현 정부가 한미간에 전작권 전환에 대해 합의한 것을 ‘시기에 기초한 전환’으로 프레이밍 했다. 고 자신들의 방식을 ‘조건에 기초한 전환’이라고 포장했다. 날짜를 정하면 전작권 전환을 위한 역량을 갖추지 않고 전환만 하고보자는 무책임한 계획으로 보이게 하려는 의도였다. 결국 조건에 기초한 전환은 조건을 주관적으로 판단하게 만들고 전작권 전환을 지연시킨 씨앗이 되 어 버렸다.
 
 두 번째 덫은 전작권이 넘어와야 독자 작전능력을 갖출 수 있다는 수동적 태도이다. 전작권 전환이 안되었다는 것에 모든 이유를 달면서 국방개혁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이 역시 오늘의 현실이다.
이렇게 두 개의 덫에 걸려 있는 상태에서 브런슨은 전작권 전환에 대한 판정권(Adjudication)을 미국이 가지고 있다고 선언해버린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전작권 전환 추진은 ‘시간에 기반한 전환’이 아니었다. 전작권 전환 목표 연도를 ‘2012년’으로 했던 것은 ‘준비 완료 시점을 목표로 설정한 역량 기반 전환’이었다.
2003년 여름, 노무현 대통령은 “전작권 환수를 위해 필요한 전력, 즉 자위적 국방역량을 갖추는 데 드는 소요와 준비기간”을 먼저 물었다. 2004년 11월 6일 ‘협력적 자주국방 종합 추진계획’ 보고에서 노 대통령은 “조급히 추진할 일은 아니다”고 했고, 군은 한군국이 작통권을 행사할 역량을 갖추는 기간은 ‘2012년’이라고 보고했다. 합참은 1950년 7월 14일 유엔군에 작전통제권을 넘긴 날을 상기하며 이를 ‘714계획’이라 이름 붙였고, 2005년 9월 제4차 한미안보정책구상(SPI) 회의에서 미국 측에 공식 협의를 제안했다.
 
 이 시기에 용어의 정비도 이루어졌다. 초기에는 주권 회복의 당위성을 담은 ‘환수(還收)’를 널리 썼으나, 외교 협상이 본격화되면서 공식 합의 문서에는 ‘전환(Transition)’이 표준어로 채택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작전통제권을 맡았던 미국 측에 일방적 회수라는 외교적 거부감을 줄이고, 동맹이 유지되는 가운데 연합방위의 지휘 주체가 ‘미군 주도’에서 ‘한국군 주도’로 바뀐다는 군사적 실체를 담기 위함이었다.
 
 주목할 점은 미국이 오히려 더 빠른 날짜를 요구했다는 사실이다. 2006년 7월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서한을 통해 ‘2009년 전환’을 제안했고,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8월 18일 용산 기자회견에서 “한국군은 고도로 훈련되어 2009년에 전환돼도 충분히 준비된다”고 공언했다. 또한 벨 사령관은 9월 4일 럼스펠드와 합참의장에게 보낸 서한(후일 기밀 해제)에서 “한국군이 전시 수준의 환경에서 높은 수준의 지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정보·감시·정찰 같은 미국의 ‘가교 능력’이 필요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미 의회조사국(CRS)의 래리 닉시 보고서(2006.10.18.) 역시 미 국방부가 2009년 이양을 선호했으나 한국 측의 전력 확충 계획에 맞춰 2012년으로 조정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당시 한국측이 자주국방 역량을 갖추기 위해 목표연도로 2012년을 제시하자 2009년을 제시했던 미국측이 도리어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미국 국방부 쪽에서는 노무현 정부가 전작권 전환 합의라는 정치적 효과만 거두고, 실제로는 국방력 강화를 위한 투자는 안하려는 것은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자주국방을 통해 전작권 전환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 사상최대의 국방비 투자를 하였다.
 
 결국 2006년 10월 20일 제38차 SCM에서 양국은 전환 시점을 ‘2009년 10월 15일 이후, 2012년 3월 15일 이전’으로 정하고 미국의 ‘가교전력(bridging capabilities) 제공’을 합의했다. 이어 2006년 11월 취임한 김장수 국방장관이 미 측과 협의해 최종 타결한 일자가 2012년 4월 17일이었다. 7월 14일의 숫자를 거꾸로 뒤집어 잡은 이 날짜는, 미군 사령관이 “2009년에도 가능하다”고 본 일정보다 3년의 추가 준비 기간을 확보해 관철한 ‘한국군의 준비 완료 예정일’이었다.
 
3. 이명박, 박근혜가 놓은 덫
 
 목표 일자가 정해지자 정밀한 역량 검증 체계가 가동되었다. 2007년 6월 28일 벨 한미연합사령관과 김관진 합참의장이 서명한 『전략적 전환계획(STP)』은 66개 핵심 과업과 단계별 이행 일정을 규정했다.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은 2009년 3월 19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 보고에서 “한미 양국은 STP에 따라 2012년 전환을 달성하기 위한 정상 궤도(on track)에 있다”고 공식 보고했다.
 
 이 계획에 따라 2008년부터 연합연습 명칭을 ‘을지프리덤가디언(UFG)’으로 변경하고 새로운 지휘체계를 시험했다. 2009년 8월 UFG 연습에서는 한미 공동검증단이 한국군 합참의 기본운용능력(IOC) 약 300개 세부 평가 항목을 정밀 검증했다.
 
 검증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009년 10월 22일 제41차 SCM 공동성명에서 김태영 국방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UFG의 성공적 결과를 공식 인정했다. 이어 11월 합참은 전작권 전환 작업 진도가 65% 완료되었다고 발표했다. 지휘통제(C4I) 체계만 기술적 문제가 남아 있다고 밝혔다. STP 가동 2년 반 만에 전체 과업의 65%를 넘기고 1단계 검증을 통과했다는 사실은 노무현 정부의 2012년 시간표가 역량에 기반한 전환계획이었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2010년 봄 보수 진영의 연기 압박이 거세지자, 불과 몇 달 전 자신들이 승인한 65% 진척도를 “단순 합산이라 실제와 거리가 있다”며 깎아내렸다. 그리고 2010년 6월, 미국에 어렵게 부탁해가며 전환 시점을 2015년 12월로 늦췄다.
 
 박근혜 정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2012년 4월 17일 날짜를 직접 타결했던 김장수 전 장관이 국가안보실장이 된 뒤, 2014년 10월 제46차 SCM에서 전환 연도를 아예 삭제하고 ‘조건에 기초한 전환’으로 틀을 바꿨다. 노무현 정부의 계획에 ‘시기에 기초한 전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이 이름은 맞지 않는다. STP에는 이정표와 검증이 있었고, 2009년에는 연습을 통한 평가가 있었다.
 
 
 조건에 기초한 전환에서 내건 조건은 세 가지다. 연합방위를 주도할 한국군의 핵심 능력,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동맹의 초기 대응 능력, 전환에 부합하는 한반도와 지역의 안보 환경이다. 첫째, 둘째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있던 능력 기준과 성격이 같다. 셋째는 잴 수 있는 척도가 없다. 조건으로 추가한 ‘한반도와 역내 안보환경’은 언제든 전환을 무기한 유예할 수 있는 ‘움직이는 골대’로 작동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 조건 프레임을 깨는 대신, 조건을 조기 충족해 미국이 반대할 명분을 없애려는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F-35A 스텔스기 도입, 군사정찰위성(425사업) 착수, SLBM 수중 발사 성공, KF-21 시제기 출고를 달성했고 2019년 8월 1단계 IOC 평가를 마쳤다.
 
 하지만 미국은 코로나19 훈련 조정을 이유로 2단계 완전운용능력(FOC) 검증을 지연시켰다. 끝내 ‘안보환경’ 조건을 거론하며 전환 연도 확정을 가로막았다. 한국군의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조건 기반’이라는 프레임이 골대를 이동시켜 버렸던 것이다.
 
 한국군의 역량은 축적되어 왔다. 연평균 국방비 증가율은 노무현 정부 8.9%, 이명박 정부 5.2%, 박근혜 정부 4.1%, 문재인 정부 7.5%였다. 목표 시점을 지워버리고 조건을 내세웠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오히려 국방예산을 삭감하여 조건 충족을 어렵게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4. 환수 목표시점 복원
 
 현재 이재명 정부는 병역자원 급감이라는 절박한 인구학적 위기 속에서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20세 남성 가용인원은 2019년 약 33만 명에서 2043년 약 12만 명으로 3분의 1 토막이 난다. 군 당국은 총병력을 2040년까지 50만 명 수준으로 정예화할 계획이다. 병력 집약형 군대를 유지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재명 정부가 인공지능(AI),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정찰위성과 우주전력, 해양 억제력을 위한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추진하는 것은 무기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기술로 병력을 대체하는 필연적 국방 혁신이다. 이 첨단 자산들이 결합될 때 한국군은 전구 작전을 독자 지휘할 완전한 하드웨어와 신경망을 완비하게 된다. 국방부가 브런슨 사령관의 발언에 “골대를 옮기면 영원히 못 한다”고 맞받아친 것은 더 이상 자의적인 조건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명확한 정책적 의지다.
 
 대한민국이 당당히 전작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덫’을 깨야 한다. 소요를 산정하고 기준을 정한 뒤 명확한 목표 시점(Target Date)을 복원해야 한다. 날짜가 못 박혀야 전군의 조직과 예산이 움직인다. 이재명 정부는 임기안에 환수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주관적이고 측정 불가능한 전작권 전환의 세 번째 조건인 ‘안보환경’을 군사적 검증 항목에서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 반증할 수 없는 정치적 환경 변수는 정상 간 외교 협의의 대상이지 군사적 검증 기준이 될 수 없다. 또 브런슨 사령관이 역량평가에 대한 판정권을 일방적으로 행사하는 현재의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미가 상설 조정 기구를 통해 해결하는 규칙을 세워야 한다.
 전작권 환수 이전이라도 한국군 주도의 연합연습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독자적인 위기관리 절차와 C4I 체계를 일상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전작권 유무와 무관하게 우리 군이 실질적인 작전 지휘를 행사할 때, 전작권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 되는 것이다.
 
 전작권 전환은 한미동맹을 한단계 발전시킨다. 이미 2006년 제38차 SCM 공동성명과 2009년 제41차 SCM 공동성명은 전작권이 전환되더라도 미국의 핵우산과 확장억제 공약,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유지된다고 천명했다. 전작권 전환은 이런 구조 아래서 세계 5위권의 군사 강국 대한민국이 자기 방위의 주도적 책임을 지는 체제가 되는 것이다. 한미동맹은 과거 냉전형 동맹이 아니라 21세기형 호혜적 동맹으로 진화하게 된다. 우리가 준비한 책임의 시간표를 작동시켜야 할 때다.


 


 * 이 글은 시사IN 999호 기고문 근거로 작성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