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조사 차 단둥에 왔다. 10월 23일 도착했는데 공기가 달랐다. 예전 이 강변을 걸을 때의 단둥은 느슨했다. 이번에는 길목마다 공안이 서 있었고, 강 건너 신의주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에도 조심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이전과 다른 삼엄함의 이유는 곧 알게 됐다.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 일정이 나의 체류와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 삼엄함 한가운데 신압록강대교가 있다. 완공 12년 만인 10월 15일 공식 개통한 다리다. 열리지 않는 다리로 서 있던 그 곳을 24일 김 위원장이 직접 건너왔다. 항미원조기념탑에 헌화하고 자동차 공장을 둘러본 뒤 같은 다리로 돌아갔다. 집권 후 여섯 번째 방중이자 초단기 당일치기였다. 베이징으로 향하던 지난 다섯 차례와 달리, 이번 방중은 국경도시에서 시작해 국경도시에서 끝났다.
다리 앞에 서서 질문을 던져본다. 굳이 최고 지도자가 이 다리를 건너야 했을까. 다리는 북중 연결의 상징이고 단둥이 협력의 무대라는 설명만으로는 모자란다. 경제협력이 목적이라면 실무진으로 족했다. 지뢰 도발로 남북 긴장이 높아지고 신변 이상설까지 돌던 때였다. 그는 몸소 나타나 소문을 지웠다. 그러나 소문은 걷혔지만 더 큰 물음이 남았다.
수령이 국경을 넘었는데 시진핑 주석은 없었다. 북한 체제의 문법으로는 이례적이다. 당초 리창 총리가 맞는 것으로 계획됐다가 왕후닝 주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둘 다 이미 평양을 다녀간 인물이다. 리창은 지난해 10월 노동당 창건 80주년에, 왕후닝은 올 7월 북중 우호조약 65주년에 방북해 김 위원장을 만났다. 이 다리 개통의 결정적 계기가 된 시 주석의 6월 방북까지 더하면, 정상 간 길은 이미 닦여 있었던 셈이다. 장쩌민부터 시진핑까지 세 지도자의 이론을 설계한 책사가 석 달 만에 다시 김 위원장 앞에 섰다는 것도 가볍지 않다. 그렇다면 이번 자리의 무게는 배석자에게서 읽어야 한다. 왕이 외교부장이 일정과 환송을 함께했고, 최선희 외무상이 수행했다. 양국 외교 사령탑이 국경도시에 모였는데, 양측 발표에 미국은 한 줄도 없다.
그 침묵을 두고 여러 해석이 오간다. 김 위원장이 시 주석에게는 11월 선전 APEC에서 트럼프를 상대로 쓸 카드를 건넸고, 트럼프에게는 언제든 만날 수 있다는 무지개를 띄웠다는 해석이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과 마주 앉기 전 늘 중국을 찾았다. 11월과 12월로 잡힌 미중 정상회담, 거론되는 미중러 3자 회동과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겹쳐 놓으면 단둥은 그 길목의 정거장이다. 다리 위의 짧은 동선이 실은 긴 외교 일정표의 한 칸이었을지 모른다. 신중론도 있다. 외교 수장들의 동석만으로 정상회담 사전 조율을 단정할 수 없으니, 향후 대화를 염두에 둔 의견 교환 정도로 본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 답이 있다고 본다. 확인된 것은 적고, 확인되지 않은 것은 많다.
다만 현장에서 내가 본 것은 조금 다른 결이었다. 중국은 경제협력에 방점을 찍었다. 리창 총리는 개통식 축사에서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북한에 대한 지지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북핵이라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핵을 말하지 않는 중국, 지금 중국이 북한을 대하는 방식이다. 북중 모두 이 다리를 두고 '경제 연계'와 '공동 이익'을 앞세웠다.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새 물류 동맥이 돌기 시작하면 제재의 둑은 안쪽에서부터 허물어질 수 있다. 중국은 이 다리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다시 넓히려 한다.
북한의 걸음에는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지방발전 20×10 정책', 해마다 스무 개 시·군에 지방공장을 세워 10년 안에 지방을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김 위원장이 단둥에서 굳이 공장 생산 현장을 둘러본 것도 그 연장선에서 읽힌다. 평양이 아닌 지방, 구호가 아닌 공장. 북한이 지금 보여주고 싶은 얼굴이다. 새 다리는 그 구상에 필요한 자재와 설비가 건너올 통로다. 제재 속에서도 자력으로 버텨 왔다는 자부심, 이제 중국이라는 뒷배까지 확인했다는 여유가 그의 짧은 동선에 담겨 있었다.
강 건너 신의주 쪽 풍경은 또 달랐다. 철책은 높고 촘촘했다. 국경을 요새화하면서 다리는 연다. 문을 열되 담은 높이는 것, 북한이 개방을 감당하는 방식이다. 다리가 열려도 개방의 속도는 평양이 정한다. 남쪽 경계에 쌓는 장벽과 북쪽 국경에 두르는 철책은 같은 논리에서 나온다.
그 철책을 보다가 수년 전 한 북측 고위 관료가 내게 했던 말이 아른거렸다. ‘남북이 경제협력해야 우리민족의 희망이 생길텐데 말입니다.’ 그때는 흘려들었던 말이 압록강 바람 속에서 다시 들렸다.
새 다리로 화물이 오가기 시작하면 북중 경제는 빠르게 엮일 것이다. 그 흐름 어디에도 남쪽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남북 사이 대화의 선은 끊긴 지 오래고, 북한은 남쪽을 '적대적 두 국가'의 저편에 세워 두었다. 중국은 북한을 끌어안으며 판을 짜고, 미국은 그 판 위에서 거래를 계산한다. 우리만 계산서 밖에 있다. 북미가 만나고, 미중이 흥정하고, 중러가 손을 잡는 동안 우리는 지뢰와 장벽 사이에 서 있다. 남북 경제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북미 대화가 열린다면 그때 내놓을 남북의 의제를 차분히 준비하기도 해야하지만 때에 따라서 선제적인 제안도 필요해 보인다.
다리는 열렸고, 강은 조용하다. 침묵이 던지는 메시지를 읽는 일, 그리고 그 침묵 위에 우리의 말을 얹는 일. 단둥을 떠나며 손에 쥔 숙제다.
<이 글은 광화문 뉴스 칼럼으로 게제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