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 바닷가에 놓일 테이블
얼마 전 ‘조건은 밖에서 오지만 문을 여는 손은 안에 있다.’고 쓴 적이 있다. 그 조건의 회로에 이제 구체적인 날짜들이 찍히기 시작했다. 5월의 베이징, 9월 24일의 워싱턴, 그리고 11월 3일의 미국 중간선거, 그리고 그에 이어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이 좌표들 사이 어딘가에 또 하나의 좌표, 북미정상회담이 놓일 수 있다는 관측이 무성하다. 문제는 그 좌표가 찍히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찍히느냐다. 나는 그 자리가 원산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베이징에서 워싱턴으로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은 베이징을 국빈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무역, 대만, 이란 문제를 한 테이블에 올렸고, 시 주석은 오는 9월 24일 워싱턴을 답방하기로 했다. 관세와 기술패권을 둘러싼 신경전이 여전하지만, 두 강대국이 최소한의 안정선을 그으려 한다는 방향만은 분명하다. 미중이 부딪치는 전선이 줄어들수록 한반도는 두 나라가 드물게 협력을 과시할 수 있는 무대가 된다.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이 미중 데탕트의 물결 위에서 나왔듯, 올해 9월의 워싱턴 회담은 그 자체로 북미대화의 문지방이 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가장 든든한 후견인이 워싱턴의 만찬장에 앉는 날, 평양으로 건너갈 메시지가 없으리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중간선거라는 시계
워싱턴 회담과 나란히 놓고 보아야 할 것이 11월 3일의 미국의 중간선거다. 집권 2기의 중간선거는 대통령의 성적표이고, 역사는 그 성적표에 후한 적이 드물었다. 이란과의 전쟁을 협상으로 매듭짓고 노벨평화상을 바라보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은 패 가운데 가장 극적인 것이 북한이라는 사실은 굳이 감춰지지 않는다. 지난달 아무 설명 없이 싱가포르의 산책 사진 한 장을 다시 올린 것은, 그 패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가장 트럼프다운 신호였다. 10월의 외교적 장면 하나가 선거 구도를 흔들 수 있다는 계산은 '10월의 서프라이즈'라는 이름으로 불려운 워싱턴 정치의 오랜 문법이기도 하다.
이 시계는 위험이자 기회다. 위험은 자명하다. 선거를 위한 회담은 사진을 위한 회담이 되기 쉽고, 사진을 위한 회담의 끝을 우리는 하노이에서 이미 보았다. 그러나 기회도 그 안에 있다. 우리는 일은 그 사진의 내용을 이재명 대통령이 제안한 단계적 접근, 곧 핵물질 추가 생산과 ICBM 기술 개발의 중단이라는 이행 가능한 첫 단추에 단단히 정박시키는 것이다. 동기가 불순하다고 결과까지 불순하란 법은 없다. 역사는 종종 계산 속에서 진전을 낳았다.
왜 원산인가
2018년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해변을 오래 이야기했다. 대포가 바다를 향해 불을 뿜는 그 백사장을 보며 자신은 콘도와 호텔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가 눈여겨본 곳이 바로 원산이다. 그리고 지난해 여름, 김정은 위원장은 그 원산에 갈마해안관광지구를 열었다. 제재 아래에서도 체제가 스스로 내놓은 미래상의 전시장인 셈이다.
싱가포르와 하노이는 제3국이었고, 판문점은 경계선 위였다. 원산은 다르다. 미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북한 땅 깊숙이 내려앉는 장면은, 김정은에게는 체제 인정의 극대치이고, 트럼프에게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어떤 무대장치로도 만들 수 없는 그림이다. 무엇보다 장소 자체가 의제를 발화한다. 미사일이 날아오르던 해안에 회담 테이블이 놓이는 순간, 무엇을 내려놓으면 무엇이 세워지는가라는 질문이 말보다 먼저 도착한다. 제재에 미래를 저당잡힌 북한 주민에게도, 성과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미국 유권자에게도, 원산의 백사장은 어떤 공동성명보다 길게 남을 문장이다.
회담이 열어줄 것들
북미정상회담의 효과는 합의문 이전에 이미 시작된다. 정상이 마주 앉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오판과 우발적 충돌의 확률이 낮아지고, 서해와 군사분계선의 긴장은 한 단계 내려앉는다. 2018년의 경험이 일러주듯, 북미의 해빙은 곧 남북의 공간이다. 판문점과 평양의 남북정상회담, 이산가족 상봉, 개성 연락사무소가 모두 싱가포르를 전후한 몇 달 사이에 쏟아졌다. 북미가 문을 열면 남북은 복도를 얻는다.
경제의 셈법도 다르지 않다. 전쟁 위험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경제에 매겨져 온 할인,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결국 지정학의 값이다. 대화 국면이 자리를 잡는 것만으로 그 값의 일부가 돌아온다. 북한 주민에게는 더 절실하다. 대결이 길어질수록 제재의 무게는 정권이 아니라 장마당과 밥상 위에 먼저 얹힌다. 회담이 경제협력과 교역, 인도적 지원과 이산가족 상봉, 민간 교류의 통로를 다시 여는 것, 그것이 백사장의 사진 뒤에 따라와야 할 실물이다.
장면 이전에 놓아야 할 것
그러나 장면은 구조를 대신하지 못한다. 하노이의 교훈은 회담의 성사가 아니라 합의를 지탱할 이행의 설계가 관건이라는 것이었다. 원산의 그림이 아무리 선명해도, 그 아래 동결과 검증, 상응조치의 회로가 깔리지 않으면 백사장의 테이블은 밀물 한 번에 쓸려간다. 서울이 할 일이 여기에 있다. 워싱턴과 평양 사이의 촉진자 역할만이 아니다.
회담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할 것이다. 그러나 원산의 백사장에 테이블이 놓이는 날이 온다면, 그 모래를 미리 골라둔 손들은 사진에 찍히지 않을 것이다. 평화는 늘 그렇게, 이름 없는 손들이 다져놓은 자리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