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커니즘(mechanism)’이라는 말의 어원을 따라가면 고대 그리스어 메카네(mēkhanē), ‘기계’에 닿는다. 시계를 떠올려 보자. 시계 내부에서는 하나의 톱니바퀴가 옆의 부품을 움직이고, 그 부품이 다시 다른 부품을 작동시킨다. 각각의 부품은 작고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서로 맞물려 움직일 때 시곗바늘이라는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메커니즘이 가리키는 것은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그 결과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작동 원리다. 

 

  사회의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떠한 변화를 완성된 결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부품들이 어떤 방식으로 맞물려 작동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북한을 이해하는 일도 다르지 않다. 최근 제기되는 북한의 ‘경제 호황론’을 단순히 북·러 밀착이 가져온 결과로만 봐도 될까. 김일한 박사는 최근 북한 경제를 두고 제기된 ‘북·러 협력->초호황’이라는 인과를, 김정은 시대의 정책과 제도, 인사 등 수많은 부품들이 어떻게 맞물렸는지를 통해 설명한다.

 

  그중 하나가 최근 북한의 수산업이다. 북한은 제9차 노동당대회에서 어선의 현대화와 바다 양식 확대 등의 수산업 발전을 경제과제로 제시했다. 대표적으로 함경남도 신포시와 락원군 등에서는 밥조개(가리비)를 비롯한 고단백 수산물을 생산하기 위한 양식 기반을 확대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수산업 강화는 북·러 관계라는 또 다른 부품과 맞물린다. 2024년 리철만 당시 내각부총리를 단장으로 한 북한 대표단은 러시아를 방문했다. 당시 양측은 “로씨야해상경제지역에서의 어업에 관한 조선 할당량 제공 문제”를 논의했다. 북한 어선이 러시아의 배타적경제수역에서 조업할 수 있도록 어획 할당량을 제공하는 방안을 협의한 것이다.

  김일한 박사는 이 협의를 기점으로 북한이 원양어업을 확대하기 위한 어선 건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지난 3월 최고인민회의를 바탕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의 수산업에 대한 관심이 북·러 밀착 이후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부터 수산업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2014년에는 새로 건설된 수산물 냉동시설을 현지지도했고, 2015년에는 함경남도 신포원양수산연합기업소 산하 조선소를 방문하는 등 어선 건조와 수산기지 현대화를 독려했다. 하지만 만성적인 식량 부족 상황에서 자본과 노동력, 설비를 수산업에 대규모로 투입하기는 어려웠다. 당장 주민의 곡물 수요를 충족하려면 한정된 경제 자원을 농업에 우선적으로 배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러 관계가 강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과거에 만들어놓았지만 제대로 돌리지 못했던 수산업 정책의 톱니바퀴가 북·러 협력이라는 새로운 동력을 만나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수산업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식량 문제 해결의 핵심인 농업은 물론 금속·기계공업 등에서도 생산 기반 정비와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농기계공장의 CNC(Computer Numerical Control)화를 추진하며 장기적으로 수확 후 손실을 줄여나가고 있다. 또한 상원세멘트 지배인을 노동당 중앙위원으로 발탁하고, 전 내각 금속공업상 안금철을 당 경제담당 비서에 임명하는 등 산업 현장을 경험한 인물들을 경제 정책의 전면에 배치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내각이 있다. 내각 총리는 정치국 상무위원의 한 축을 담당하고, 각 부문의 내각상들 역시 당 중앙위원으로 격상되었다. 김정일 시대와 비교하면 내각의 위상과 권한이 눈에 띄게 확대된 것이다. 또한 중앙검사위원회의 법적 통제 기능을 강화해 당과 군 기관이 내각의 경제 운영에 제동을 거는 행위를 철저히 통제했다. 즉, 경제 정책을 수립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내각이 정책을 안정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까지 구축한 것이다.

 

  끝으로 김일한 박사는 현재 북한 경제를 ‘초호황’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고난의 행군 이후 보기 드문 경제적 회복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변화의 직접적인 동력은 북·러 협력이지만, 그 협력이 경제 성장의 추진력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북한이 오랜 시간 정책과 제도, 인사를 정비하며 경제를 움직일 기반을 꾸준히 구축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학 연구자는 북한의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북한을 결과만으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위기와 호황, 혹은 붕괴와 생존이라는 이분법 속에 스스로를 가둘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눈앞에 북한 아니라 그 속에 북한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일이다. 수많은 부품들이 어떻게 맞물려 오늘의 북한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연구자다운 마음가짐임을 상기해 보는 시간이었다.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 준 코리아연구원과 귀한 자료를 아낌없이 공유해 주신 김일한 박사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