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는 한반도 평화의 기본축이지만, 그 문(門)이 홀로 열린 적은 드물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은 닉슨 독트린과 미중 데탕트라는 바깥의 기류를 타고 나왔고, 1990년대 초의 남북기본합의서 역시 소련 붕괴와 냉전 해체라는 지각변동 속에서 가능했다. 하지만 국제정세가 창을 열어줄 때, 그 창으로 걸어 들어간 것은 언제나 우리 자신의 선택과 준비였다. 조건은 밖에서 오지만, 문을 여는 손은 안에 있다. 지금 그 조건의 회로에 미약하나마 전류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교착의 틈에서 감지되는 신호
지난달 프랑스 에비앙레뱅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 정상이 만찬에서 2시간 가까이 나눈 대화의 상당 부분이 북핵 문제였다는 사실이 공개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싱가포르 회담 당시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걷던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다시 올리며 '이제는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말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완전한 비핵화라는 일괄타결 대신 추가 핵물질 생산과 ICBM 기술 개발의 중단부터 시작하는 단계적 접근을 제안했다. 이란과의 전쟁을 무력이 아닌 종전 협상으로 매듭짓고 노벨평화상을 의식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시선이 한반도를 향할 수 있다는 관측은, 결코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다.
물론 신중해야 한다. 핵을 갖지 않은 이란조차 다루기 버거웠던 미국이, 이미 상당한 핵물질과 이를 실어 나를 미사일 체계를 축적한 북한 앞에서 셈법을 정리하기란 훨씬 복잡하다. 하노이의 '노딜'과 판문점 이후 지켜지지 못한 약속들이 일러주듯, 관건은 회담의 성사 여부가 아니라 합의를 지탱할 이행 구조를 설계할 수 있느냐다. 다만 대화 자체가 얼어붙어 있던 지난 몇 해와 견주면, '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한미 사이에 공유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국면은 이미 이동하고 있다.
2027년, 상징이 놓일 좌표
이 흐름 위에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가 놓인다. 즉위 직후부터 '무장하지 않은, 무장을 해제시키는 평화'를 일관되게 외쳐온 레오 14세 교황의 방한이 예정된 이 대회는, 단순한 가톨릭 청년 행사를 넘어 동아시아와 북한을 거쳐 한반도에 닿는 평화 순례의 종착점이 될 수 있다. 임진각 폐막 미사 제안이 가벼운 상상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상징은 헌신 위에 설 때만 힘을 얻는다.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이 한국 민주화의 한 동력이 되었던 것은, 그 방문이 이미 축적된 시민의 열망 위에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상징이 도착하기 전에 길을 먼저 내야 하는 까닭이다.
종교와 시민사회가 낼 길
정치가 막힌 자리를 종교가 먼저 열어온 것은 역사의 오랜 이치다. 1994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방북이 카터의 방북과 제1차 북핵 위기 해법으로 이어졌고, 1995년 범종단 북한 수재민 돕기가 얼어붙은 접촉의 물꼬를 텄다. 지금 우리가 낼 길도 다르지 않다. 교황의 북한 경유 방한과 이를 재점화되는 북미대화와 맞물리게 하고, 종교계는 범종단 협의체를 통해 남북 종교교류와 인도적 지원의 통로를 먼저 열어야 한다. 정치의 회담이 더디더라도 신뢰의 회로는 먼저 이어질 수 있다. 정치가 할 수 없는 일을 종교가 먼저 시도할 때, 그것이 곧 촉매가 된다.
난경(難境)이 곧 시경(試境)
어려운 자리는 언제나 종교인과 이름 없는 이들의 몫이었다. 눈보라 속 2,300마일을 걸어 워싱턴에 닿은 '워크 포 피스'의 승려들처럼, 평화는 책상 위 논리가 아니라 부르튼 발바닥과 낮은 곳을 향한 걸음에서 구체화된다. 지금 감지되는 북미대화의 신호와 2027년이라는 시간의 좌표는 같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회담이 열릴 것인가를 기다리는 대신, 열렸을 때 헛되이 흩어지지 않을 신뢰를 먼저 쌓는 일이다. 난경이 곧 시경이다. 위기를 호기로 바꾸는 대전환은, 바람이 없을 때 스스로 바람이 되어 걸어가는 이들에게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