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진핑의 방북 시점이 중요한 이유
2026년 6월 8일 정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태운 전용기가 평양 공항에 내렸다. 올해 첫 해외 순방이다. 올해 시진핑 주석의 외교 동선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각국 정상들을 베이징으로 초청하는 '안방 외교'에 무게를 싣고 있다는 것이다. 1월 이재명 대통령의 새해 첫 국빈 방문을 시작으로, 2월 메르츠 독일 총리 등 5월까지 총 10개국의 지도자가 중국을 공식 방문했다. 동남아, 러시아, 카자흐스탄, 한국 등 4차례 해외순방을 했던 작년과 비교가 된다. 시 주석은 올해 해외순방을 최소화하는 대신 중국 국내 방문일정을 소화했다.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적용되는 '제15차 5개년 계획'의 틀을 잡기 위해서다.
중국 국가주석의 연간 첫 해외순방지는 중국 외교의 우선순위를 압축하는 상징이다. 시진핑은 그 자리에 평양을 놓은 것이다. 이번 방북이 '북중 밀착의 재확인', '전통 우의의 복원'을 뛰어 넘는 중국의 또다른 시급한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미중 전략경쟁의 장기전 구도와 당면하게는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하기 위한 외교 게임에서 '북한 카드'가 유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 시진핑의 방북은 시점에서도 주목할만 하다. 지난 5월 14~15일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부산에서 합의한 ‘관세 휴전’에 대한 골격은 유지했다. 이란 전쟁이 길어지는 상황에서 우선 '관리된 경쟁'이라는 가드레일부터 재정비했던 것이다. 트럼프의 방중은 2017년 11월 이후 약 9년 만이었지만 회담은 공동성명 없이 끝났다. 그렇지만 9월 차기 회담이라는 확실한 결과물을 남겼다. 시진핑의 평양 방문은 정확히 이 두 회담 사이, 그러니까 5월 회담이 끝난 지 약 3주, 9월 회담을 3개월 앞둔 시점에 이루어졌다.
이 시간표가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시진핑의 평양행은 9월 워싱턴 회담의 준비 과정이다. 미중 정상회담 테이블에서 북미관계라는 의제는 중국이 쥘 수 있는 능동적 카드 중 하나다. 트럼프가 북한에 대한 구애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희토류를 제외하고 대만, 관세, 수출통제, 펜타닐 등 대부분의 의제에서 중국은 방어적 위치에 있다. 북한 문제에서 중국이 '협조자'라는 카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김정은 위원장과 사전 조율이 필수적이다.
2026년 상반기 미중관계는 이란 전쟁이라는 돌발 변수 위에서 움직였다. 미국의 대이란 군사작전과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은 유가와 물가를 흔들었다. 트럼프의 방중 일정은 전쟁 대응으로 두 차례 연기된 끝에 5월로 확정되었다.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에게는 중국이 쥔 희토류 공급과 인플레이션 관리가, 시진핑에게는 미국이 쥔 반도체 접근이 절실한 상황이다. 트럼프와 시진핑이 '관리된 경쟁'의 구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데는 미중의 사정이 있었다. 이 같은 구도에서 북한 문제가 대치의 소재가 아닌 협력의 의제로 작용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5월 미중 정상회담을 한 달여 앞둔 4월 9-10일,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평양을 방문했다. 최선희 외무상과 회담하고 김정은 위원장을 면담했다. 2019년 9월 이후 약 6년 7개월 만에 이뤄진 중국 외교부장 방북이었다. 왕이의 방북은 5월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미대화 재개의 조건을 최종 조율하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미중은 회담을 마치고 북한문제를 의논했다고 밝혔다. 4월 왕이 방북, 5월 베이징 미중정상회담, 6월 시진핑의 평양방문은 모두 9월 미중정상회담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이 북한 카드가 유용하다고 판단한 전제는 트럼프가 여전히 북미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 역시 지난 2월 9차 당대회 사업총화 보고에서 '우리도 미국과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란 전쟁 국면에서도 북한의 미국 비난은 수위가 낮았다. 더구나 트럼프 개인은 거명하지도 않는 절제된 화법을 유지했다. 북미가 다시 마주 앉는 길목에 중국이 서 있다는 것, 그 길목의 통행 조건에 중국의 이해를 반영시키는 것이 시진핑의 계산이다.
2. 시진핑의 전략- 백년변국과 ‘새로운 역사적 여정’
시진핑이 평양을 방문하는 날인 6월8일, 노동신문1면에는 시진핑의 기고문이 실렸다. 이 기고문에는 시진핑의 국제정세 인식과 전략이 그대로 녹아있다. 이러한 인식과 전략을 노동신문에 기고했다는 점에 특별히 주목해야 한다. 중국의 전략에서 차지하는 북한의 위상변화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최근년간 백년이래의 세계적인 변화국면이 급속히 발전하고 국제정세가 복잡하게 뒤엉키는‘이라고 국제정세를 진단했다. 이는 시진핑이 2017년 이래 반복해 온 '백년미유지대변국(百年未有之大變局)', 즉'백년에 없던 대변화 국면'의 노동신문판 번역이다.
이 표현에는 국제질서 변화에 대한 시진핑의 정세인식이 담겨 있다. 지난 백여 년의 국제질서는 두 차례 세계대전이라는 열전, 미소 대립의 냉전, 그리고 미국 단극 패권의 탈냉전으로 이어져 왔다. 시진핑은 이 백년의 주기가 끝나고 질서가 새로운 단계로 이행하고 있다고 본다. 그가 말하는 '새로운 시대'는 수사가 아니라 시대구분론이다. 열전·냉전·탈냉전을 관통한 서구 중심의 질서가 임계점에 도달했고, 지금이 차기 질서의 골격이 짜이는 형성기라는 인식이다.
이번 방북으로 시진핑은 이같은 시대인식에 따라서 북중관계를 설정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새시대 중조관계발전의 설계도를 함께 마련하고 교류와 협조를 지속적으로 강화'하자고 했고, '오늘 새로운 력사적 출발점에서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맞이한 중조관계'라고 규정했다.
이 '새로운 역사적 출발점'이라는 규정은 2019년 방북 때와는 결이 다른 표현이다. 2019년 방북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방점을 찍었다면, 이번에는 북중관계 자체를 새 질서 형성의 한 단위로 변경시킨 것이다. 북중관계에서 한반도 관리의 도구라는 측면은 사라졌다. 이제 북중관계는 시진핑이 구상하는 차기 국제질서에서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방문 직후 시진핑이 김정은에게 보낸 친서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나는 방문성과에 대해 만족하게 생각합니다. 중조관계는 이미 ’새로운 력사적 려정‘에 들어섰습니다.” 노동신문 기고문에서는 새로운 '출발점’이었는데, 북중 정상회담 이후에는 새로운 ‘려정’으로 바뀌었다. 시진핑이 구상하는 대미전략을 본다면 이는 단순한 수사의 변화가 아니다.
시진핑은 중국이 '두번째 백년분투목표를 향해 힘차게 전진하고있'다고 노동신문에 굳이 썼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두 개의 백년'은 시진핑 시대 중국의 시간표다. 첫 번째 백년은 공산당 창당100년인 ‘2021년 전면적 소강사회 완성’이다. 두 번째 백년은 건국 100년인 ‘2049년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완성’이다. 시진핑이 평양에서, 그것도 북한 인민이 읽는 노동신문 지면에서 이를 명시한 것은 중국의 시간표 안에 북중관계를 위치시키겠다는 의사 표시다.
이 장기 시간표가 바로 대미 전략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충돌을 회피하고 시간을 벌되, 장기적으로는 미국 주도 질서의 외곽에 중국 중심의 관계망과 규범을 축적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5월 베이징 회담에서 신형대국론을 이야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굴기하는 중국이 미국이 관리해온 국제질서의 일부는 담당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구도에서 이번 북중 정상회담으로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재조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반패권 · 다극화 담론이라는 차원에서는 북한을 중국의 언어에 동조하는 나라로 포섭하는 것이다. 미중 정상외교에서는 북한 카드로 중국의 발언권을 키우는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중국에게 북한은 '관리해야 할 골칫거리‘였다. 중국은 UN 안보리에서 대북제재에 나섰던 것이다. 이제는 '운용해야 할 전략 자산'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이 이동이야말로 시진핑이 노동신문에 ’4가지 전지구발기(Global Initiative)‘를 언급한 이유이다.
'4가지 전지구발기'는 시진핑이 순차적으로 제기해 온 글로벌발전이니셔티브(GDI), 글로벌안보이니셔티브(GSI), 글로벌문명이니셔티브(GCI), 그리고2025년 제기한 글로벌거버넌스이니셔티브(GGI)를 가리킨다. 발전·안보·문명·거버넌스라는 네 영역은 사실상 국제질서의 전 영역을 포괄한다. 즉 이 묶음이 바로 탈냉전 이후 질서를 중국이 주도적으로 설계하겠다는 종합 청사진이다. 시진핑은 북한에게 두 나라 사이의 협력을 넘어, 중국이 그리는 차기 질서를 만드는데 파트너가 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이 ’하나의 중국 원칙‘ 지지를 재확인하고 북중관계를 '제1의 전략 사업'으로 규정한 것은 이 요구에 대한 화답이다. 시진핑은 대미 전략 차원에서 이같이 북한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3. 지구촌을 달굴 대형 퍼포먼스를 예정하는 7월
이번 회담은 공동성명도 극적 발표도 없었다. 시진핑은 9월 워싱턴 회담에서 쓸 카드를 확보했고, 김정은은 핵 문제의 침묵과 경제협력의 약속을 얻었다. 북중관계는 '새로운 력사적 려정'이라는 공식 규정과 조약 65주년이라는 후속 일정을 갖게 되었다.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6월8일 금수산 영빈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정치·경제·문화 등 각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확대 발전시켜 '조중 관계발전의 새로운 장'을 열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7월 북중 우호협력 및 호상원조 조약 체결 65주년을 계기로 열기로 한 쌍방 기념행사가 정상회담 이후 가시화되는 첫조치일 것이다. 7월에는 미국독립 250주년 행사와 이란에서는 종전 MOU 서명 이후 7월 4일에 그동안 미뤄왔던 하메네이 장례식을 치른다. 7월의 퍼포먼스는 새로운 백년을 향하는 기세를 발산하는 한달이 될 것이다.
북중 정상은 당· 정부· 군이라는 세 채널를 비롯하여 '여러 부문과 여러 급'에서 교류를 전명화하겠다고 했다. 여기서 군 채널의 명시는 가볍지 않다. 북중 군사 교류가 조약65주년을 계기로 복원될 경우, 이는 북러 군사협력에 대한 중국식 균형 행보이자 한미일에 대한 신호가 될 것이다.
시진핑이 방북하는 날에 노동신문은 ’국방력강화에 힘을 넣고 있는 중국‘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작년 11월부터 시진핑 주석이 군사력을 강화해온 상황을 소개하는 기사다. 다소 생뚱맞지만, 북중 사이에 군사교류를 강화하는 것에 대한 사전 포석이었다. 주목할만한 것은 이 기사에 “2027년은 중국인민해방군창건 100돌이 되는 해이다”라고 명시했다는 점이다. 북중 군사협력은 오는 7월 북중조약 65주년 행사를 기점으로해서 내년까지 여러 가지 행사라는 외양까지 쓰면서 전개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북중 회담으로 유리한 외교적 위치로 한걸음 내디뎠다. 미국은 대화 의지를 내비치고, 러시아는 군사·경제적 보상을 제공하며, 중국도 북한의 위상을 격상시켰다. 주변 세 강대국이 동시에 평양의 문을 두드리는 상황이다.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초해온 북한이 그동안 누려보지 못한 달콤한 전략적 호사다.
앞으로 북한과 중국은 경제와 민생에서 다방면적으로 협력을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은 '실무적협조를 확대하고 두 나라 인민의 복리와 우의를 계속 증진시켜야' 한다고 했다. '실무적 협조'는 북중 관계 문법에서 경제협력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여건은 이미 조성되고 있다. 지난3월 베이징–평양 국제열차가 약6년만에 운행을 재개했다. 4월 왕이 방북에서는 이미 경제협력 확대를 의제로 삼았다. 앞으로 접경 인프라 협력, 중국인 단체관광의 본격 재개와 원산갈마지구 등 북한 관광 프로젝트와 연계, 식량·비료·에너지 등 민생 부문의 지원성 교역 확대, 노동력 송출과 IT 외주 등 다각적인 영역에서 협력이나 묵인 속에서 북중관계는 발전해나갈 것이다.
물론 안보리 제재의 틀이 형식적으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은 제재를 노골적으로 파기하지는 어려울 것이다. 인도주의·민생·관광 등 비제재 영역에서 시작해서 차차 넓혀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청년·교육·체육·예술 부문에서 교류가 재개되고 북한 유학생의 중국 파견이 정상화된다면, 이는 '바통이 대를 이어' 전해지게 하자는 시진핑의 표현이 실제 정책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신호가 될 것이다. 북중 교류와 협력이 재가동되면 한국 기업의 대중 · 대북방 비즈니스 환경에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4. 미중 정상회담을 향해가는 중국과 북한
역사의 거울에 비추면 이번 북중 정상회담은 그 좌표가 더 선명해진다. 1950년대는 북중관계가 전장에서 맺어진 혈맹이었다. 냉전기에는 중소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북한과 이를 붙잡으려는 중국의 긴장 어린 동거였다. 탈냉전기에는 한중수교와 함께 소원해진 관계가 핵 문제로 인해 골칫거리 관계로 변했다. 2026년의 북중관계는 새 질서의 형성기에 서로를 필요로 하는 두정상의 계산된 재결합이다. 혈맹이라는 수사가 다시 돌아왔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 이익의 결합이므로 과거 어느 때보다 견고할 수도, 어느 때보다 쉽게 재조정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역사의 거울에 비추면 이번 회담의 좌표가 더 선명해진다. 1950년대는 북중관계가 전장에서 맺어진 혈맹이었다. 냉전기에는 중소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북한과 이를 붙잡으려는 중국의 긴장 어린 동거였다. 탈냉전기에는 한중수교와 함께 소원해진 관계가 핵 문제로 인해 골칫거리 관계로 변했다. 2026년의 북중관계는 새 질서의 형성기에 서로를 필요로 하는 두정상의 계산된 재결합이다. 혈맹이라는 수사가 다시 돌아왔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 이익의 결합이므로 과거 어느 때보다 견고할 수도, 어느 때보다 쉽게 재조정될 수도 있다.
이번 북중 정상회담은 9월 미중 정상회담을 향한 시진핑의 사전 포석이고 동시에 시진핑의 시대 인식과 장기전략의 산물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관리 대상에서 전략 자산으로 재정의되었고, 회담의 결과로 북중관계는'새로운 력사적 려정'에 진입했다. 그 여정은 조약 65주년 기념을 계기로 구체적 일정표를 갖게 되었다. 북한은 이러한 시진핑의 구상이 펼쳐지는 여백을 차지했다. 이번 북중 정상회담으로 9월 워싱턴 회담에서 한반도 의제는 사실상 예약되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9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와 연결하는 돌다리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물론 김정은의 의도대로 정세가 뒤따르지만은 않을 것이다. 김정은도 여백을 채우는 행위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카드가 미중 테이블 위에서 유통될수록,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질서는 도면이 새로 그려지고 있다. 남과 북은 각각 다른 위치에서 펜을 들고 도면에 앞에 서 있다. 웅대한 전략과 치밀한 구상이 있다면 완성된 도면 앞에서 함께 손잡고 기뻐할 날도 올 것이다.
- 끝 -
* 이 글은 시사in 979호(2026. 06. 12)에 실린 글에 기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