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새해 벽두부터 지구촌에는 교황 레오 14세와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평화를 향한 두 개의 높은 봉우리에서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두 지도자가 모두 평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상에 와닿는 두 목소리는 파장이 극과 극처럼 다르기만 합니다. 땅위에 발을 닫고 살면서 전쟁보다는 평화를 갈망합니다. 찬바람 불어오는 냉기속에서 두 지도자의 목소리를 접합니다. 때론 울컥하기도 하고, 때론 으악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두 지도자들이 비록 다른 봉우리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 목소리가 이 곳 한반도에서 만나 냉전과 분단으로 두껍게 쌓인 두터운 얼음을 녹여내기를 바랄 뿐입니다. 2027년 서울에서 세계청년대회가 열립니다. 한반도에서 신뢰구축 장치를 마련할 좋은 기회입니다. 이 바람을 담아서 교황레오 14세가 202611일 세계평화의 날에 낸 담화를 살펴봅니다.

1. 군사적 억지의 모순과 평화주의의 시각

267대 교황 레오 14세가 새해 첫날 발표한 제59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202611)는 현대 세계에서 평화를 위협하는 논리와 이데올로기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그 첫 번째 표적은 군비 경쟁을 정당화해 온 군사적 억지론, 특히 핵억지론입니다. 교황은 군사력, 특히 핵억지력의 위력에 대한 발상은 국가들 사이의 관계가 법과 정의와 신뢰가 아닌, 공포와 힘에 의한 지배 위에 세워져 있다는 비이성적 논리에 기반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처럼 두려움에 기반한 평화는 모순적이며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교황은 이미 60여 년 전 성 요한 23세 교황이 핵무장 상태를 살아가는 인류의 비극을 경고한 대목을 인용했습니다. 성 요한 23세는 사람들이 언제 그 닥쳐올 폭풍이 끔찍한 폭력으로 터질지 몰라 끊임없는 공포에 사로잡혀 산다. 그런 무기가 결코 부족하지 않기에 그들의 두려움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탄식하며, “누군가 전쟁으로 인한 참혹한 학살과 파괴의 책임을 감히 지려 하지는 않으리라고 믿고 싶지만, 우발적이고 예기치 못한 어떤 상황에 의해 그 불꽃이 시작될 수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경고했지요. 한 순간의 실수나 우연으로도 핵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이 예지는 오늘날까지도 섬뜩한 현실감을 줍니다.
이러한 비판은 평화주의자들의 오랜 주장과 정확히 맥을 같이합니다. 군사적 억지력에 기반한 평화란 결국 공포의 균형위에 선 평화일 뿐,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입니다. 평화주의 관점에서 보면, “폭력으로 평화를 지킨다는 주장은 애초에 자기모순입니다. 힘에 의한 강요된 평온은 진정한 평화가 아닙니다. 성경에서도 칼을 가지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마태 26:52)고 하신 예수님의 경고처럼, 폭력의 위협으로 유지되는 평온은 결국 더 큰 폭력을 낳을 뿐입니다. 평화주의자들은 진정한 평화란 폭력의 균형이 아니라 정의와 신뢰에 기반해야 지속될 수 있다고 역설해 왔습니다. 미국의 반핵운동가들도 냉전 시기 핵억지론을 가리켜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가 아니라 상호확증불신이라고 풍자하며, 두려움에 기댄 평화는 위선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곤 했지요. 레오 14세 교황의 담화는 바로 이러한 평화주의적 통찰을 재확인해 준 것입니다. 교황은 두려움과 어둠을 정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호소하며, 평화를 가능하고도 현실적인 것으로 믿으라고 격려했습니다.

2. “무기의 균형이 아닌 상호 신뢰의 평화

레오 14세 교황 담화의 두 번째 핵심은 대안적인 평화 논리에 대한 제시입니다. “인류는 무기를 없애지 못하면 그 무기에 인류가 멸망할 것이다라는 경고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교황은 성 요한 23세의 권고를 인용하며 진정하고 지속적인 평화는 각국이 똑같이 많은 무기를 갖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상호 신뢰에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다시 말해 비무장의 평화(unarmed peace)”라는 담화 주제처럼, 교황은 더 많은 무기나 더 강한 군대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신뢰만이 참된 평화를 확립한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사실 이 주장은 오래전부터 이상주의자들의 공허한 외침으로 치부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교황 담화는 이를 신앙과 이성에 기초한 현실적 원리로 격상시킵니다. 이미 1960년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현대전의 양상을 지적하며, “신형 무기를 가진 자들은 언제든 더 참혹한 죄악을 저지를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계의 주교들은 모두에게 특히 각국 지도자들에게 양심의 책임을 거듭 호소한다고 하였지요.
공의회는 군비경쟁을 멈추려면 무엇보다 인간의 마음이 새로워져야 함을 역설했고, 레오 14세 교황은 그 맥을 이어받아 마음의 무장해제를 촉구합니다[7]. 요한 23세 교황이 주장한 온전한 군비축소(integral disarmament)”란 단순히 무기를 줄이는 게 아니라 인간 영혼의 변화를 뜻했습니다. 증오와 불신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이해와 신뢰를 채울 때 비로소 군비경쟁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기존 평화운동가들의 견해와 정확히 합치합니다. 베트남 출신 불교 지도자 틱낫한 스님은 평화는 길이며, 그 길은 평화다라는 유명한 말로, 평화를 이루는 수단 자체가 평화적이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결국 신뢰와 비폭력이라는 수단 없이는 목적지인 평화에도 도달할 수 없다는 논리이지요. 레오 14세 교황이 담화에서 제시한 상호 신뢰의 논리는 이런 맥락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선언입니다. 특히 교황이 국제사회에 만연한 힘에 의한 평화의 환상을 걷어내고, “믿음에 의한 평화로 나아가자고 촉구한 대목은 주목할 만합니다. 이는 단순한 도덕훈계가 아니라, 평화 구축에 관한 실천적인 로드맵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신뢰야말로 최고의 안보 자산이라는 인식이야말로, 핵무기부터 AI 무기에 이르는 신형 군비경쟁의 악순환을 끊어낼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3. 베네주엘라 사태에 대한 교황의 예언과 현실

교황 담화의 세 번째 중요한 내용은 첨단기술, 특히 인공지능(AI)의 군사적 활용에 대한 우려입니다. 레오 14세 교황은 오늘날 사적 경제·금융 이익이 각국을 첨단 군비 개발로 내몰고 있으며, AI로 강화된 새로운 무기들이 군사적 억지의 비이성을 한층 부채질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교황은 전쟁을 정당화하려고 신앙의 언어마저 무기화하는 현대 정치 풍조를 꾸짖으면서도, 동시에 기술 발전이 폭력 분쟁을 얼마나 악화시키고 있는지도 지적했습니다. 담화문에는 다음과 같은 강경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계속된 기술적 진보와 인공지능의 군사적 적용은 무력 분쟁의 비극을 더욱 악화시켜 왔다. 생사에 관한 결정이 갈수록 기계에 위임되면서, 정치·군사 지도자들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이는 모든 문명의 기반을 이루는 인간주의 원리들의 전례 없는 파괴이자 배신이다.”
교황은 나아가, 살상 결정권을 기계에 넘기는 풍조를 인문 가치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규정했습니다. 이러한 비판은 AI 윤리의 관점에서도 매우 시의적절한 경고라 할 수 있습니다.
교황의 이러한 예지력은 담화 발표 불과 며칠 후 벌어진 한 사건으로 현실에서 입증되었습니다. 바로 202613일 발생한 미국의 베네수엘라 사태입니다. 당시 미국은 급진적으로 악화된 베네수엘라 정세를 이유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기습 납치하다시피 체포했는데, 이 작전에서 첨단 AI 군사기술이 대거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군은 특수부대 투입과 함께 AI로 제어되는 자율무인기 드론 군집(swarm)과 원격 자동화 무기 등을 활용하여 베네수엘라 측 방공망과 경호부대를 무력화했다고 합니다. 사람의 조종 없이 목표물을 식별해 공격하는 자율살상드론이 사용되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이는 UN 보고서까지 언급된 2020년 리비아 내전의 터키제 킬러드론 사례를 떠올리게 합니다. 당시 Kargu-2라는 드론이 프로그램된 대로 자율적으로 인간 표적을 추적·공격한 정황이 보고되어 파장이 일었지요. 또한 2020년 이란의 핵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 암살에 이스라엘 모사드가 위성으로 원격조종되는 AI 저격총을 이용한 사례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인공위성이 연결된 자율 원격기관총으로 표적을 식별해 정밀사살한 이 사건은, 인간 개입 없이 기계가 살상 임무를 수행한 대표적 사례였습니다.
결국 이러한 현실은 레오 14세 교황의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교황은 담화에서 이미 정치·군사 지도자들이 생사의 결정을 기계에 떠넘기려 하는 파괴적 경향을 짚어냈는데, 불과 며칠 뒤 현대판 터미네이터라 할 사건이 벌어진 셈입니다. 교황의 경고는 정확했습니다.
평화주의 관점에서 이는 대단히 중요한 지적입니다. 기술은 가치중립적이라지만, 그 쓰임이 인간성에 반할 때 기술 자체가 악이 될 수 있음을 일깨우기 때문입니다. 교황의 담화는 기술 발전 시대에 더욱 요구되는 윤리적 나침반 역할을 합니다. 교황은 기계에게 생사결정권을 맡기는 것은 인류 문명의 법적·철학적 원칙에 대한 전례 없는 배신이라고 분명히 선언했습니다. 군사 AI 기술 개발에는 막대한 자본과 빅테크 기업들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살상무기까지 민영화되는 흐름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안보 이슈가 아니라, 윤리와 사회 정의의 문제입니다.
교황의 예언자적 통찰은 우리에게 숙제를 던집니다. 이제 AI 시대의 평화운동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핵무기 시대에 핵군축운동이 필요했듯, AI 무기 시대에는 킬러 로봇 금지를 요구하는 새로운 평화운동이 태동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UN 차원에서 치명적 자율무기(Lethal Autonomous Weapons)에 대한 규제를 논의하고 있고, 수백 명의 과학자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이 연명하여 인공지능 무기의 개발을 중단하라는 공개서한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베네수엘라 사태로 교황의 경고는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미래 세대가 물려받을 세상을 생각한다면, AI 기술을 어떻게 쓸지에 대한 도덕적 성찰과 국제 규범 형성이 시급합니다. 교황의 목소리는 그 지점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기술을 다스릴 지혜를 모으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기술이 인류를 위협하는 상황이 닥칠지도 모릅니다.

4. ‘정글국제질서에서 희망 : 이상이 아닌 현실

레오 14세 교황의 담화와 그에 대한 평화주의적 해석을 따라오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화두가 있습니다. 과연 비폭력의 원칙은 현실에서 효과가 있는가? 흔히들 비폭력을 두고 이상적이지만 비현실적”, “낭만적 도덕론일 뿐이라는 평을 합니다.
그렇다면 비폭력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레오 14세 교황은 담화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상기시킵니다. “예수의 평화는 무장하지 않은 평화(Unarmed peace)였다”, “칼을 집어넣어라”(요한 18:11)고 제자들에게 명하신 예수님의 비폭력 길을 교회가 함께 증언해야 한다고 호소하였습니다. 폭력의 유혹을 뿌리치고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걸어간 그리스도의 평화야말로, 겉보기에 무력해 보이지만 결국 죽음을 이기고 부활의 승리를 가져온 겸손하고 꾸준한 힘이라고 교황은 강조합니다.
교황 담화가 주는 메시지도 바로 이것입니다. “참평화는 가능하며 현실적이라고 한 교황의 선언은 공허한 이상론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에 뒷받침된 희망입니다. 레오 교황의 담화는 각자도생의 정글 같은 국제사회에서도 영성과 도덕, 그리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통해 길을 열 수 있다는 믿음이지요. 결국 평화주의란 허황된 몽상이 아니라 모든 신앙과 철학의 가장 깊은 진리에서 우러나온 요구라 할 것입니다.
국제 관계의 현실주의(realism) 이론가들은 세계를 만인이 만인에 대해 늑대가 된”(homo homini lupus) 홉스의 자연 상태에 비유하면서, “국제정치는 정글과 같다”, “힘이 곧 법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우리는 그런 암울한 장면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유엔 헌장도 아랑곳없는 일방적 침공이 벌어지고, 강대국의 힘 앞에 국제법이 무력해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나 미중 패권경쟁 등은 많은 이들에게 역시 국제사회는 냉혹한 각자도생의 세계라는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심지어 어느 나라 지도자는 공공연히 국제정치는 정글이다. 우리는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바로 이런 때일수록 레오 14세 교황의 평화 메시지는 그 빛을 발합니다. 정글 같은 국제질서에서 희망을 말하는 용기, 이것이 교황 담화의 핵심 가치입니다. 교황은 담화에서 두려움과 어둠에 익숙해지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전쟁과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을 원래 그런 것으로 체념해버릴 때, 이미 우리는 평화를 잃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점에서 교황의 관점은 냉혹한 현실주의와 일선에서 충돌합니다. 현실주의는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도덕도 양심도 부차적이라고 여길지 모릅니다. 하지만 교황은 오히려 그런 사고방식이야말로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무한 경쟁과 군비 증강의 논리가 과연 안전을 가져다주는가? 오히려 모두를 불안과 공포 속에 몰아넣지 않는가? 교황은 많은 이들이 현실적이라 부르는 서사는 희망이 결여된 서사라고 꼬집었습니다. 희망과 도덕이 빠진 세계관은 부분적이고 왜곡된 것이며, 진정한 현실감각은 오히려 선의와 연대에 있다는 역설입니다.
교황은 담화 말미에 모든 공동체가 적대감을 대화로 해소하고, 정의를 행하고 용서를 소중히 배우는 평화의 집이 되기를 바란다고 썼습니다. 이러한 연대와 화해의 노력은 결코 나약함의 표시가 아닙니다. 폭력이 활개치는 세상에서도 미리 평화로운 세상의 법을 따라 사는 이들이 있기에, 인류는 조금씩 나아질 수 있습니다

5.한반도와 세계청년대회: 평화의 씨앗 뿌리기

마침 다가오는 20278, 서울에서는 세계청년대회(WYD)가 열릴 예정입니다. 전 세계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이 한국에 모여 함께 평화와 희망을 노래하는 장대한 축제이지요. 이는 한반도에 있어서 커다란 기회입니다. 교황 레오 14세도 2027년 세계청년대회에 직접 참석할 계획을 밝히며, 이 대회를 희망의 순례로 일컬었습니다. 특히 이번 서울 대회는 분단국에서 열리는 최초의 세계청년대회가 됩니다. 교황은 그 자리에서 한반도 평화에 대한 특별한 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남북 모두 군비 경쟁에 수십 년간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으면서 힘에 의한 평화에 입각해서 공포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남과 북은 모두 상대방의 군사력 강화를 이유로해서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군비졍쟁의 길에서 무한 반복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영구 평화도, 공동 번영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게 자명합니다. 대신 교황이 가리킨 길은 상호 신뢰와 대화입니다.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이것만큼 절실한 처방은 없을 것입니다.
특히 청년들에게 두려움과 폭력의 문화에 물들지 말고 빛의 파수꾼이 되라고 요청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평화의 증인들은 계속 존재한다며 용기를 북돋웠습니다. 한국 청년들은 분단과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사는 세대이지만, 동시에 K-팝과 IT로 글로벌 문화의 중심에 선 역동적인 세대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교황 담화의 원칙을 실천에 옮기는 상상력입니다.
교황은 부활하신 예수의 인사말 평화가 너희와 함께!”를 인용하며, 그 인사가 오늘날도 현실을 변화시킬 힘임을 역설했습니다. 폭력과 냉소에 물든 세상에 영원히(Forever)” 속삭이는 평화의 숨결을 불어넣자는 초대였습니다. 이 초대에 응하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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