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일 막을 내린 APEC 정상회의 기간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이번 글에서는 정상 간 회동 불발의 이유를 분석해 보고, 다음 글에서는 한반도평화 증진의 과제가 현재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고 싶다는 희망을 강하게 나타냈다. 아마도 김정은 위원장과 인간적 소회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 북한 핵공격을 암시하는 ‘화염과 분노’의 표현을 사용했고, 김정은 위원장을 ‘로켓맨’이라고 조롱한 바 있다.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늙다리 미치광이’라는 험악한 언사를 쓰기도 했다. 그후 화해와 관계 개선의 국면에서 서로 서신을 교환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편지에 대해 ‘아름다운 러브레터’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이 우여곡절 끝에 다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김정은 위원장을 정상 대 정상으로 다시 만나고자 하는 인간적 마음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밝혔듯이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 gorqhdbrnr)와 잘 지내야 한다.’라는 것을 들 수 있다. 평이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그 의미가 평범한 것은 아니다. 한국인은 북한이 핵을 사용하는 경우 압도적 군사력을 갖춘 미국에 의해 초토화될 것이기에 감히 ‘도발’하지 못할 것으로 믿고 정서적으로 평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미국은 오히려 신중하다. 무력 충돌이 비화하여 북한이 핵을 사용하는 경우 미국은 재래식 무기만으로도 북한 전역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겠지만, 최소한 수만, 수십만 명의 사상자가 나오고, 미국인이 인류역사상 일본인에 이어 피폭 민족이 된다면 그 전쟁을 미국이 승리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트럼프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 기간 김정은 위원장과 호의적 만남을 가졌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푸틴 외에 뉴클리어 파워인 북한과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홍보할 충분한 정치적 성과를 거두는 셈이 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회동 제의를 왜 거절했을까? 지난 9월 중국 전승절 행사에서 시진핑, 푸틴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김정은 위원장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났다면 과거와 달라진 김정은 위원장의 국제적 위상이 한껏 돋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회동 제의를 거절했다. 그 이유는 북미 정상 간 회동이 신냉전 기류의 현 국제정세에 부합하지 않으면서 북한이 얻을 수 있는 소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곧 북한의 국익에 보탬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9월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국제정세에 신냉전이 도래했다고 선도적으로 주장했다. UN 안보리의 대북제재로 곤경을 겪고 있는 북한이 북·중·러의 진영 간 결속 속에서 난관의 돌파구를 열어젖히려는 주관적 의도가 엿보이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5개월 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러시아와 서방세계 간의 대치 국면이 전개되면서 국제정치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 그리고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중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미국, 한국, 일본의 군사적 결속이 심화하면서 동북아시아에 신냉전의 기류가 뚜렷해졌다. 이에 따라 북한의 중국에 대한 지정학적 위상이 전과 달라지면서 북한은 중국과의 전략적 연대를 더욱 강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 파병의 반대급부로 러시아로부터 UN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를 뛰어넘는 막대한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받는 중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신냉전 기류 속에서 큰 수혜를 입으며 국익을 최대한 도모하는 중이다. 현 국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판문점에서 아무런 소득 없이 우호적 만남을 갖는 것은 신냉전 기류의 국제정세에 부합하지 않는다. 만약 회동이 정상회담의 성격을 띠고 북한의 국익에 보탬이 되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면 회동은 성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대북 정책의 근간은 여전히 북한 비핵화다. 백악관은 이점을 명백히 밝힌 바 있다. 회동에서 결과물이 나온다면 그것은 어떻게든 북한 비핵화와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 비핵화를 거부하는 김정은 위원장이 아무런 소득 없이 한국 정부의 환대 속에 판문점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우호적으로 만나는 것은 국제정세에, 그리고 남북관계에 아리송한 혼동만 던질 것이다. 결국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북미 정상 간 회동은 언제 가능한 것일까? 미국이 수용할 수 있으면서 북한에 제시할 이익으로 어떤 안이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영리한 인물이다.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과 죽기 살기로 싸워보기도 했고, ‘사랑’도 해본 적이 있어서 김정은 위원장의 캐릭터와 북한의 국익에 대해 어느 북한 전문가 이상으로 잘 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월 29일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다시 만나게 되기를 희망하면서 ‘한반도는 공식적으로 전쟁상태며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겠다... 당신, 당신의 팀,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과 함께 매우 열심히 노력하겠다... 김정은 위원장과도 열심히 노력해서 모든 것들이 다 잘 해결될 수 있게 하겠다.’라고 말했다. 과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미국, 한국이 수용할 수 있는 한반도 평화증진 방안을 만들 수 있을까? 후속 글에서는 과연 트럼프 대통령이 방안을 만들어서 한반도평화 증진에 기여할 수 있겠는지, 그리고 남북관계가 현재 어떤 상황에 놓여있고 관계 개선의 전망이 어떠한지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 본 글은 '통일뉴스'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