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새로운 풍토가 나타나고 이것이 주류가 되면 00류(流)라는 이름을 붙인다. 한국에서도 회자가 되고 있는 ‘니토류(니텐이치류, 二刀流、二天一流)’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일본의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가 교토의 검술 명문 가문인 요시오카(吉岡) 가문과의 세 번째 결투에서 처음으로 두 개의 검(쌍검)을 사용하였다고 해서 ‘니토류’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요즘 일본에서는 이 ‘니토류’를 사용하는 야구선수에게 열광하기도 한다. 미국 메이저 리그에서 타자와 투수를 겸직하는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 선수이다. 투타 모두 기록적으로 병행하는 모습을 보고 일본인들은 그를 ‘니토류 오타니’라고 부른다.
이시바 총리의 퇴진
최근 일본 정계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소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말도 많았던 이시바 총리가 사의를 표했다. 자민당 총재를 사임하는 것이지만 일본 총리직에서도 사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임 퍼포먼스가 이전의 총리사임에 비하면 화려하다. 보통 총리의 사임은 선거에서 패했을 때 즉시 발표되고, 총리는 슬그머니 뒷문으로 나가는 것이 이제까지 일본 정계, 특히 자민당의 총재•총리퇴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번 이시바 총리 퇴진 과정은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퇴진하면서 국민들이나 당내에서 ‘용단’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정문으로 화려하게 퇴진하려는 모습은 이제까지의 일본 정계에서는 낯선 모습이다. 두 번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기 좋게 패배하면서 자민당을 곤경에 빠뜨리고, 총리직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당을 혼란에 빠뜨리고, 이로 인해 당내 분열을 초래한 중심적 인물이었음에도 퇴진의사를 밝히자 오히려, ‘감사하다’, ‘용단이다’, ‘고뇌에 찬 결정이다’ 등과 같은 칭찬이 끊이지 않는 현상은 분명 이전의 총리 퇴진 모습과는 다른 생경한 풍경이다.
이시바류(石破茂 流)
이시바류(石破茂 流)는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생소한 표현이다. 하지만 최근 일본 정계, 특히 집권여당인 자민당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현상과 이후의 전망을 예측해 보면 이시바류가 생성될 가능성도 없지 없다. 1년 전 이시바 총재 선출을 둘러싸고 당내에서 어떤 결정과정을 거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취임당시 이시바는 당내에서 정치적 비주류였다. 이는 자민당의 개혁을 운운하거나 당내 개혁적인 소장파들에 대한 보편적인 처우이기도 하다.
이시바총리 이후 당내의 정치적 결정에서 정치적 야합(네마와시, 根廻し)이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선거결과에 따른 총재•총리 교체의 물밑교섭이 통하지 않은 현상이다. 여기에 일부 국민들의 총리 퇴진 거부 시위까지 나타나면서 국민적 인기를 얻기도 했다. 총리와 자민당의 지지율이 낮아서 선거에서 패배했음에도 이시바 총리가 총리직을 이어갈 것이라고 선언한 이후 오히려 당 지지율이 상승하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시바 총리의 퇴진 회견은 개선장군이 초야로 돌아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어찌 보면 이시바는 자민당 총재•총리직을 내려놓으면서도 정치적 이익을 크게 얻어가는 모양새다.
이시바 총리는 총선 패배 이후부터 퇴진 발표 과정에서 당내에서 하나의 파벌을 형성할 수 있는 입지를 다졌다고 볼 수 있다. 개혁성향의 전 총리가 하나의 파벌을 형성했다는 것은 자민당의 개혁이 점점 더 현실화 되어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차기 총재•총리로 유력한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 농림수산대신도 자민당의 개혁을 천명하고 있다. 이는 그의 아버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 전 총리의 정치적 염원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들을 지켜보면 이시바 총리는 일본의 정계, 그리고 자민당 내에서 확실히 이시바류를 창출한 정치인이 된 듯하다. 자신의 파벌을 형성하고, 나아가 총재•총리직에 재도전할 정치적 역량도 챙겼다고 볼 수 있다. 어찌 되었든 이시바의 총재•총리 재임기간이 1년으로 비교적 짧은 기간이었지만 일본의 정치풍토는 이시바로 인해 변화의 조짐이 확실히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즉, 일본의 자민당 내에서 새로운 이시바류(流)의 파벌이 등장했을 수 있다.
자민당의 개혁과 한계, 그리고 한일관계
자민당의 개혁은 연립 확대로 나타날 수 있다. 연립 확대는 당내 다양성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특정 파벌에 의한 정치적 야합에 의해 정치•정책이 결정되는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집권여당인 자민당의 다양성은 한일관계에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왜냐하면 자민당 내 일부 극우적 정치색이 희석되기 때문이다. 당내 극우적 정치색이 희석되면 주변국가와의 외교관계는 유연해질 것이다. 이는 아직 건재한 아베파벌의 극우색이 옅어지는 효과로 나타날 것이다.
개혁을 추진했던 이시바에 이어 일본의 차기 자민당 총재•총리로 유력한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의 개혁적 성향이 어떻게 드러나는가가 향후 일본 정치계의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대신이 총재•총리로 취임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가 가진 개혁적 성향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당내 호응이 하나의 정치현상을 만들어내는가 라는 문제가 향후 일본 정당 정치의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독립적으로 부상한 우익정당인 참정당의 약진은 자민당의 극우색채를 덧씌울 대안 정당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자민당 내에서 아베파벌로 분류되는 타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경제안보담당상(자민당 의원)의 부상도 차기 총재•총리 선출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타카이치 사나에 의원이 총재•총리에 선출된다면 자민당의 연립확대 방향은 참정당으로 거론되겠지만 자민당으로서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미 아베파벌의 쇠퇴가 가시화 되는 시점에서 집권 여당 내에 우익정당이 자리 잡는다는 것은 자민당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한편 타카이치 사나에 의원이 총리로 예상된다면, 한일관계는 아베정권 수준의 외교적 위험성은 적겠지만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한층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타카이치 사나에 의원은 그의 정치적 ‘기본이념’에서 영토와 영해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에 대한 대응논리의 업그레이드와 함께 제3국과의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 한국이 중요하게 인식해야 하는 점은 일본의 총리가 누가 되든 그는 일본의 총리일 것이고, 일본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데 자신의 모든 노력을 강구할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