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8월 28일 개최된 생명평화민주주의연구소의 “평화시대를 위한 기구 및 제도 개선 방안 모색: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남북협력기금을 중심으로”라는 세미나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대통령의 평화통일정책에 대한 헌법적 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뉴스레터에 실어서 보내드립니다. 글의 내용은 ‘새로운 코리아구상을 위한 연구원’의 입장이 아니라 개인적 견해임을 밝힙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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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 7천명 이상의 자문위원들로 구성된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로 출범한 평통은 유신시절 ‘통일주체국민회의’나 1981년 12대 대통령 간접선거에 참여한 5천여 명의 대통령선거인단을 모시는 관변단체에 불과하였지만,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거치면서 개헌을 통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로 거듭났음.
- 1987년 민주화 국면 당시 헌법 개정에서 민주평통이 민족사적 과제인 평화통일에 대한 범국민적 의견 수렴 및 공감대 형성 기구로서의 필요성을 인정받는 동시에, 이러한 필요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1987년 헌법 개정에서 복원된 ‘지방자치’ 조항에 의해 1991년 도입된 지자체 선거에서 당선된 기초의원들도 민주평통의 당면직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게 함으로써 7천명 이상의 자문위원 구성도 더욱 확대되어 현재 2만여 명의 자문위원에 이르게 됨.
* 최근 민주평통 자문위원들을 천여명 수준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만약 천여 명으로 축소할 경우 대표성과 대중적 역할 축소의 문제 등이 크게 발생할 수 있음. 민주평통은 평화와 통일에 대한 국민적 의견수렴 및 공감대 증진이라는 목적에 걸맞게 자문위원에 지역의 사회적 유지나 지도적 인사만이 아니라, 다양한 계층이 더욱 결합할 수 있도록 수만여 명으로 더욱 확대시킬 필요가 있음. 이를 통해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강화시켜 민족사적 과제인 평화와 통일에 대해 지역의 다양한 인사들에게까지 대중적으로 접근함으로써 남남갈등 해소를 꾀해야 함.
- 헌법 개정 이후 비록 민주평통이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권 시절에는 과거 관변기구의 관성으로 운영됐지만,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민주평통을 민주적으로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하였고, 실제 ‘햇볕정책’ 등 평화통일정책 추진의 지지 기반이 되었음. 하지만 이명박 정권 및 박근혜 정권 때처럼 정권교체에 의해 집권여당이 바뀔 경우 대통령 자문기구라는 성격에 따라서 자문위원 임명과 구성에서 60~70%의 변화가 발생하기 때문에 사무처의 운영 기조도 급선회하는 경우가 발생하였음. 이로 인해 ‘자유의 북진’, ‘종북좌파 척결’ 등 자유민주통일정책을 추진한 윤석열 정권을 거치면서 민주평통은 여전히 관변기구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음.
- 그럼에도 향후 헌법 개정에서도 민주평통을 존치시킬 필요가 있음. 이는 민주평통을 없애더라도 결국에는 민족사적 과제인 평화와 통일에 관해 헌법적 의사소통을 활성화시켜 올바른 공론을 형성시킬 수 있는 국민적 기구가 필요하기 때문임. 따라서 국민적으로 평화와 통일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는 위기적 상황에서 새롭게 국민적 기구를 만드는데 많은 수고를 기울이기보다, 기존의 기구를 고쳐서 적합하게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헌법적 과제인 평화와 통일에 대한 국민적 의견수렴 및 공감대 형성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음.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보수 정권 시절에도 민주평통에서 개성공단 중단과 같은 극단적 의견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이 많이 제출되어 개성공단 반대 의견을 민주평통의 전체 의견으로 제시하지 못한 사례가 있었음. 이처럼 민주주의가 발전할수록 평화와 통일을 향한 공론장 형성이 더욱 진전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제도화한 헌법적 기구인 민주평통을 마땅히 존치시켜야 함.
* 하버마스 등이 주장한 의사소통이론에 따르면 근대 이후 생활세계에서 사람들은 상호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합리적인 이성을 실현할 수 있으며, 국민주권제와 같이 법과 도덕규범을 통해 생활세계의 합리화 과정을 제도화한다고 하였음. 하지만 자본의 발전과 효율 위주의 체계만을 꾀하려는 권력과 화폐는 법과 질서를 명분으로 생활세계에 침투하여, 오히려 이를 식민화, 도구화시킨다고 지적함.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토의민주주의로 시민 공론장의 활성화를 꾀하여 생활세계의 의사소통을 증대시키고, 이를 헌법 등에 법적으로 제도화하여 생활세계의 자율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함.
이와 같이 생활세계와 권력체계에서 각각 나타나는 법의 이중성에 의해 민주평통을 역사적으로 해석해 볼 필요가 있음. 민주평통은 평화와 통일에 대한 헌법적 의사소통 기구로서 일상세계에서 평화와 통일에 대한 소통과 공감을 통해 공론장을 형성시킬 수 있지만, 권력에 의한 법적 질서의 하향식 통로로 평화와 통일에 대해 흡수통일 등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강제할 수도 있음. 따라서 적극적인 사회적 대화를 통해 민주평통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상향식 의사소통적 정체성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 민주평통을 민주정부의 소중한 헌법적 제도 기반으로 구축해야 함.
- 현재 전국의 시군구와 해외 한인사회 차원에서 ‘통일시대시민교실’ 등을 진행하는 유일한 기관은 민주평통이며, 민주평통의 각종 평화통일행사는 시군구와 해외지역 협의회를 모두 망라하면 매일 매일 열리고 있음. 이러한 행사들이 지역 및 해외 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하여 더욱 다채롭게 진행되어야 함.
* 평화와 통일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일환으로 ‘평화통일교육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먼저 추진하는 것도 중요함. 민주평통 통일교육분과 상임위원회의 구성원으로 한국통일교육학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한국교원단체총연합, 통일교육원, 한국교육개발원, 국가교육위원회 등 평화통일교육 관련단체 인사들이 참여하여, 평화통일교육에 대해 논의하는 사회적 대화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음. 1년 이상의 숙의 과정을 거쳐 한국식 보이텔스바흐 합의 내용을 내오는 것이 필요함. 이러한 결과물을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 제안하여 평화통일교육에 대한 공식적인 사회적 합의 결과물로 제도화하여 발전시켜야 함.
민주평통은 이러한 평화통일교육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전국 시군구과 해외 지역에서 열리는 각종 평화통일강연 등을 추진하여 사회통일교육의 중요한 추진 공간으로서 역할을 발전시켜야 함.
2. 국제적 궐위의 시대에 대응하는 민주국가의 통합력 고양과 민주평통의 역할
- 1차 세계대전 이후 그람시는 “낡은 것은 소멸하고 새 것은 태어날 수 없으니 이 궐위(interregnum)의 시대에 수많은 병적인 징후들이 나타난다”라고 주장하였음. 현재 재언급되고 있는 국제적 ‘궐위의 시대’란 국제질서에서 구체제가 사라지고 있지만 대안적인 신체제가 자리하지 못해서 불안정한 과도기적 상황을 의미함. 국제적 질서의 불안정성은 미중패권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 중동전쟁, 관세전쟁 등으로 나타나고 있음.
- 궐위의 시대에 기후위기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세계적으로 불확실성이 증대하고 있음. 이에 따라 각 국가마다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국방력 강화’ 등 각자도생의 대응력을 증대시키고 있으며, 각 나라 안에서 복지보다 안보, 인종차별 등을 강조하는 정치적 보수화 경향도 짙어지고 있음.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 단위에서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안보도 강화하는 동시에, 기본적으로 복지와 민주주의, 그리고 그를 통한 혁신을 추진하는 민주국가를 강조하면서 국민적 통합력을 증대시킬 필요가 있음.
- 국제적 궐위의 시대에서 국제분쟁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이재명 국민주권정부는 한반도 군사적 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평화와 통일 분야에서 △우선 평화가 모든 것의 기본이라며 한반도 위기관리를 추진하면서 대북 확성기방송 중단 등 9.19 군사적 합의의 선제적 복원 등을 진행하고 있음. 따라서 △둘째, 사회적 대화를 통해 정치적 극우화를 막고, 평화통일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추진력을 확보하고자 하며, 이를 남과 북의 사회적 합의인 ‘남북기본협정’으로 발전시켜 한반도 평화와 공존을 제도화하려 함. 나아가 △셋째, 현재 불안정한 세계경제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를 통한 남북 교류협력의 회복으로 잠재적인 성장동력을 확보하고자 함.
* 이재명 정부의 평화적 대북정책은 실용적 외교안보정책과 함께 국제적 궐위의 시대에서 국가 간 각축전을 고려하여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 속에서 한미동맹과 한미일 군사훈련(향후 연기, 축소, 공격성 제거, 남방 지역 진행 등 고려)을 수용하는 한편, 대중국·대러시아 균형외교를 꾀하는 동시에 선제적으로 일관되게 남북의 평화적 관계를 복원하고자 함.
- 따라서 헌법적 자문기구인 민주평통에서는 헌법 4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에 대한 사회적 대화 및 합의를 추진하는 것이 필요함. 자유민주주의의 정체성과 사회적 대화의 특성에 따라서 윤석열 정권과 같이 헌법 4조에 대해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최대 합의인 ‘다당제와 시장질서’로의 흡수통일적 동의가 아니라, 최소 합의인 ‘평화와 공존’으로의 평화통일적 동의를 통해 지속적인 일관된 대북정책의 기본 원칙을 내오고, 이를 통해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사회적 통합을 실현하여 ‘남북기본협정’ 등 남북관계 개선의 마중물을 남한 내에서부터 준비해야 함.
* 헌법 4조에 대한 세부 합의로서 ‘한반도 평화통일정책에 대한 국민 대합의’의 내용으로는 한국전쟁의 참담한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전쟁과 군사적 충돌을 반대한다’, 그리고 독일의 보이텔스바흐합의와 같이 △‘강압성을 금지한다’, △‘논쟁성을 인정한다’,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올바르게 실현한다’ 등을 반영하고, 나아가 과거 개성공단 재개 당시 합의처럼 △‘어떠한 경우에도 남과 북의 교류와 협력을 추진한다’, 그리고 자유민주적 기본 원칙에 따라서 △‘모든 남북관계 개선은 남과 북의 인권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추진한다’ 등을 고려할 수 있음.
- 평화와 통일에 대한 범국민적 합의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민족사적 과제가 담긴 헌법과 그에 기초한 세부 합의에 대한 논의이기 때문에 범국민적으로 진행해야 하며, 문재인 정부 당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통일부 중심의 ‘통일국민협약’ 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전국의 시군구 지역 주민들과 해외동포들이 진보, 보수, 중도층을 망라하여 폭넓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함.
- 이를 위해 민주평통의 시군구 및 해외 협의회 체계 등을 활용하는 동시에 진보, 중도, 보수단체들이 망라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등과 연대하여 대표성 있고, 공신력 있게 사회적 대화와 합의를 추진하고, 이를 기초의회에서부터 조례로 제정하고, 지역과 해외에서부터 홍보하는 등 상향식으로 진행하여 국회에서의 여야 합의로 발전시켜 ‘한반도 평화통일정책 국민대합의’로 제도화해야 함.
* 현재 통일부가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서로 협업하기 위해서는 통일부, 민화협, 민주평통이 역할을 분담해야 함. 우선 통일부는 기존의 통일국민협약을 전문가 토론회 등을 통해 다듬어 ‘한반도 평화통일정책 국민 대합의’의 초안을 마련해야 함. 이를 민주평통과 민화협이 연대하여 모든 시군구와 해외 지역 차원에서 토론회 등을 통해 국민적 합의로 발전시켜야 함. 이렇게 통일부, 민주평통, 민화협이 협업한 결과물을 국회에 제시하여 여야 합의로 평화와 통일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실현하고 남북기본협정의 내용을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함.
이러한 방식은 과거 전문가나 일부 사회단체 위주의 추진 방식에서 벗어나 아래로부터 민주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으로 공신력과 대표성의 문제를 극복하는 동시에 대중적 의견 수렴과 국민적 공감대를 고양시킬 수 있고, 홍보 및 제도화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음.
- 이에 대한 추진 및 합의는 올해 연말까지 3대 특검 등에 의해서 내란문제가 청산되고, 내년 6월 지자체 선거가 마무리된 시점에서 추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충분히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있음.
3. 통일부와 민주평화통일자문회 사무처를 합치면 전문성, 효율성이 증대된다는 의견 비판: 각자의 전문 업무에 대한 역량 분산
- 양 기관 직무의 차이: 통일부의 직무는 “△통일 및 남북대화·교류·협력·인도지원에 관한 정책의 수립, △북한정세 분석, △통일교육·홍보, △그 밖에 통일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것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의 직무는 “① 통일정책의 자문·건의 활동 지원, ② 통일에 대한 국민 참여 확산을 위한 자문위원의 활동 지원, ③ 지역회의 및 지역협의회의 활동 지원, ④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업무상 필요한 조사·연구, ⑤ 그 밖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소집·운영에 대한 지원”임.
- 통일부의 당면 과제: 현재 경색된 남북관계에서 통일부는 효과적인 대북 정세분석을 통해 한반도 위기관리와 더불어 남북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교류협력 정책과 실제 사례를 내오는 것에 자신의 전문적 역량을 집중해야 함.
- 민주평통의 당면과제: 민주평통 사무처는 2만여 명의 자문위원을 도와서 평화통일에 대한 범국민적 의견을 수렴하고, 통일에 대한 국민적 참여를 높이기 위한 사회적 대화를 진행하는 것에 주력하여 12.3 비상계엄 내란사태 등으로 불거진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평화와 통일에 대한 사회적 통합을 이끌어내는 데 노력해야 함.
- 비효율적이었던 통합 사례: 1998년 통일부와 민주평통 사무처가 합쳐진 것은 IMF 환난을 극복하고자 조직 편제의 간소화라는 명분에서 이루진 것인데, 실제 운영에서 대통령인 의장을 대리하여 2만 자문위원을 대표하는 민주평통 수석부의장과 사무처를 관리하는 통일부 장관과의 권한 충돌이 발생하는 비효율성이 발생하여, 1년 만인 1999년 통일부와 민주평통 사무처가 분리되었음.
* 통일부와 민주평통 사무처의 통합 주장은 지방자치체 기초의원들이 민주평통 당연직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상황에서 분권화의 시대적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며, 오히려 민주평통의 활동에 통일부가 협업을 통해 조력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