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는 적어도 그 겉모습은 휘황찬란했다. 준공식은 성대했고, 다채로운 건물들은 눈길을 끌었다. 2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호텔들도 들어섰다.
김정은은 2019년 10월에 금강산을 찾았다. 김정은이 이 때 한 발언은 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의 아버지인 김정일 위원장까지도 비판하는 말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때 김 위원장은 “손쉽게 관광지나 내여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하여 금강산이 10여년간 방치되여 흠이 남았다”며 “국력이 여릴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의존 정책이 매우 잘못되였다”고 비판했다. 금강산 관광을 추진한 선임자는 당연히 김정일 위원장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노릇이다. 김위원장은 현대아산이 만든 금강산 지구에 있는 시설들에 대해서 “건축 미학적으로 심히 낙후”하다며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의 시설들”이라고 했다.
- 보기만해도 기분 나빠진다!
이 시기는 2019년 2월에 하노이에서 있었던 북미 정상회담이 좌절하고, 김위원장이 절치부심하던 때였다. 금강산 관광은 6.15 남북정상회담을 만든 햇볕정책의 산물이고, 김위원장의 부친인 김정일 위원장의 결심으로 태어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금강산 시설물에 대해 보기만해도 기분이 나빠진다고 말한 것은 햇볕정책이나 김정일 위원장이 취했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조차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금강산 시설물들에 대해 험담을 했던 김정은 위원장은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에 대해서는 크게 만족한다고 말했다. 원산갈마지구와 금강산지구를 비교해본다면 김정은 위원장의 불만이 무엇인지가 드러난다. 김위원장이 ‘건축미학적으로도 심히 낙후’하다고 지적한 것처럼 금강산 지구에 현대아산이 건설한 시설물들은 대개가 임시건물 같은 것이었다. 반면에 모습을 드러낸 원산갈마지구 건축물들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김위원장이 금강산 관광을 비판하면서 "민족적 특색이 없이 잡다하게 지어졌다", "싹 다 들어내고 우리식으로 새로 지으라"고 지시했다.
이후 북한은 현대 아산이 금강산 관광을 위해서 설치했던 금강산 시설물을 모두 철거했다. 심지어 2024년 2월에는 '금강산국제관광지구법' 및 그 시행규칙까지 폐지했다. 이제 금강산관광은 더이상 대북정책과 남북경제협력이 상징이 아니다. 북한은 지금 금강산에 새로운 시설물들을 짓고 있다. 김위원장의 지시대로 ‘우리식’으로 새로 짓고 있을 것이다. 금강산에 짓고 있는 시설물들이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원산 갈마를 보면 유추해볼 수는 있다.
- 김정은이 보내는 메시지
원산 갈마는 ‘해안관광지구’라는 특색을 살렸다. 또 김위원장이 강조하여 조성한 백두산 삼지연 일대는 ‘산악마을’의 특색에 맞게 관광지로 조성했다. 그렇다면 금강산은 ‘민족의 명산’이라는 특징을 살리는 방향으로 관광지구를 건설하고 있을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각양각태의 현대미를 발산하는 수백동의 건물들이 완벽한 예술적호환성과 련결성을 이룬 원산갈마지구”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원산갈마지구에는 각양각색의 수많은 건물들이 해안선을 따라 늘어서서 해양관광지로서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김정은이 원산갈마를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자력갱생으로도 이 정도 수준의 시설물들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 정도 수준으로 결실을 맺을 생각이 없이는 앞으로 남북 협력사업에 대해서는 꿈도 꾸지 말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 개별관광 도긴개긴
하지만 우리 정부나 현대아산으로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금강산 관광과 연루하여 대북송금사건이 정치쟁점이 되었다. 현대그룹 정문헌 회장은 자살하였고, 김대중 정부때 금강산 관광을 비롯하여 대북정책의 핵심인사인 임동원, 박지원이 구속되기도 했다. 금강산 관광은 남북경협사업이고 정치와 무관한 관광사업이다. 이런 성격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정치적 소용돌이의 한복판으로 빨려들어갔던 것이다. 또한 금강산 관광은 관광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대북제재 대상이 되었다. 현대아산과 북한이 계약을 할 때 관광비용을 일시불로 지불하기로 한 것이 이른바 대량현금(벌크캐시)이 북한에 들어간다는 이유로 제재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기 어려운 난관이 생겨버렸다.
이런 난관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개별결제 방식이 제기되기도 했다. 관광객들이 북한의 관광지에 입장할 때마다 개별적으로 비용을 결제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는 금강산 관광을 위한 계약의 기초가 흔들리는 것이다. 현대아산이 단체관광객을 모집하여 금강산 관광을 실시하는 것이므로, 관광객이 식당이나 관광지를 입장할 때마다 관광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단체관광이 아닌 개별관광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관광을 목적으로 금강산을 방문하는 것은 남북 관계의 현실에서는 단체관광의 방식이 정착된 이후 남북관계가 더 발전한 이후에 가능한 일이다.
중국이나 유럽의 여행사를 통한 관광은 모두 단체관광이다. 관광객들이 여행사의 관광상품을 구입해서 단체로 여행을 하는 것이다. 북한을 개별관광하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더구나 해외에서 판매하는 관광상품에 대해서는 북한의 승인을 받지 않은 한국인은 신청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북한과 계약을 맺은 해외관광사들은 한국인을 접수조차 받지 않은 것이다.
이제 이런 사정을 간직하고 금강산 관광은 역사의 한페이지에 기록된 사건이 되고 있다. 남북협력 역시 금강산 관광과 같은 운명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원산 갈마 해안광광지구 준공식을 통해서 새로운 길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 장군멍군하는 김정은과 트럼프
한편 김위원장의 발언에서 주목할한 대목이 있다. 김위원장이 원산갈마 준공식에 참석한 것을 보도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위원장이 “우리 나라는 동서 두 면이 바다와 접해있고 금강산과 칠보산,마전,금야,리원,염분진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동해명승지들이 많은 조건에서 앞으로 관광업분야에서 해안의 풍부한 관광자원을 합리적으로 리용하는데 집중할데 대한 방침을 견지하여야 한다”고 언급한 것을 전했다.
이 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해안관광에 대해 김위원장에게 했다는 말을 연상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6월에 열린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부터 김위원장에게 북한의 해안에 세계최고의 호텔을 지을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도 “북 해안이 가진 해변은 굉장하다. 미사일을 바다로 쏠 때마다 보았다”라며 북한의 해안에 관심을 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위원장에게 “미사일을 쏘는 대신에 세계에서 가장 좋은 호텔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트럼프는 북한이 미사일을 쏠 때도 그 배경에 보이는 해안가에 주목했던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갈마반도에서 2014년부터 2017년 사이에 10여차례 미사일 발사를 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김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미사일을 발사하던 원산갈마반도를 세계적인 해양휴양지로 만든 셈이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준공식을 성대하게 치른 것은 트럼프에게 보내는 메시도 담겨 있는 것이다.
물론 김위원장은 집권 초기부터 원산 지역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2014년에 이미 원산 일대를 국제적인 관광특구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원산은 예전부터 휴양지였다. 명사십리라는 말도 바로 갈마반도에 있는 모래밭을 가리키는 말이다. 원산은 김위원장의 출생지라는 주장도 있지만 불확실하다. 다만 원산이 김위원장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인 것만은 분명하다. 김위원장이 원산갈마 이전에 백두산과 삼지연을 산악마을로 조성한 것은 부친인 김정일과 관련된 일화 때문인 것과 비슷하다.
어쨌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관계없이 김위원장이 원산갈마를 개발하기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김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산 갈마에 대해 주목하기에 충분하다.
- 원산갈마가 ‘인파십리’가 되려면
김정은 위원장은 원산갈마를 ‘세계에 당당히 자리매김하게 될 국보급의 해양공원’이라고 수차례 언급했다. 명사십리는 ‘인파십리’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아가 금강산과 칠보산과 같은 동해안 관광자원을 합리적으로 발전시킬 것에 대해서 제시하기도 하였다.
김위원장은 금강산-원산갈마-칠보산을 열결하는 동해안 관광지구를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원산에서 금강산까지는 직선거리가 50km에 불과하다.칠보산은 금강산 못지 않는 명산이다. 500미터에 이르는 장쾌한 해안절벽이 있고, 개마고원과도 연결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과 같이 북한의 해안은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설악산에서 DMZ가지 연결된다면 분명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 것이다.
북한은 관광산업 진흥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새로운 법률 정비에도 나섰다. 2023년 8월 30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사상 처음으로 “관광법”이 채택되었다. 과거에는 금강산관광특구법(2002년)처럼 특정 지역별로 제한된 법만 있었으나, 이번에 처음으로 관광 전반을 아우르는 일반법을 만든 것이다. 이 관광법에는 국내관광 활성화, 국제관광 확대, 관광객 편의 보장, 생태환경 보호 등 현대 관광정책에 부합하는 원칙들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2025년 5월, 원산갈마지구에 대해 별도의 특별법까지 제정했다.
김위원장이 가지는 관광에 대한 관심은 국내관광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은 여러 경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원산 갈마를 ‘세계에 당당히 자리매김’하겠다는 발언이나, 관광법에 국제관광 확대가 포함된 것이 그것이다. 북한은 원산 갈마를 개방하면서 우선 러시아 관광객을 받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산 갈마 수용인원이 2만명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러시아 관광객만으로 이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쉽지가 않다. 러시아 극동지역에는 인구가 적고, 모스크바 서부 인구밀집지역에서 원산 갈마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다.
결국 한국, 일본, 중국과 동남아에서 관광객을 유치해야 한다. 미국 관광객을 유치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결국 관광객 유치가 핵심이다. 원래 북한은 원산갈마 완공을 2019년 4월로로 잡았다가 2020년 4월로 연기했다. 이 시기는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의 여파로 남북대화도 단절되었던 시기였다. 당시 필자는 국가안보실 통일비서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남북관계 활성화를 위해서 원산 갈마 준공식에 한국 참가단을 최대 500명 규모로 보내는 것을 검토했다. 또 관광활성화를 지원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도 준비했다. 관광은 굴뚝없는 산업이지만, 다른 한편 개방의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완공은 계속 늦춰졌고, 그 사이 코로나까지 발생했다. 원산 갈마 관광 활성화 지원을 통해 남북관계를 발전시켜보고자 했던 것은 필자의 구상에 그치고 말았다.
- 동해 해안산안 관광시대의 미래
김위원장의 구상대로 금강산-원산갈마-칠보산을 연결시키는 동해 관광벨트는 실현되기만 한다면 정말 환상적인 관광지가 될 것이다. 해안과 산악이 연결될 뿐만 아니라 사계절이 존재한다.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장관이 펼쳐질 것이다. 이러한 구상을 가로 막는 마지막 장벽은 대북제재이다. 제재면재를 받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이는 적극적인 관심, 새롭게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비전 등을 고려한다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선순환하면서 동해안 해안 산악 관광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