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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금융 위기를 보는 몇 가지 시각들
박종현
경제통상연구센터 / 금융
외부기고
기사
프레시안
2008/10/01

▶ 사상 초유의 시한폭탄

세상에서 가장 많은 돈이 오가는 월가는 예전부터 주목받던 존재였다. 과거에는 너무 많은 돈을 벌고 너무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이유로 동경과 질시와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면, 사상 초유의 금융 위기가 진행 중인 지금은 세계를 끔찍한 대공황의 나락으로 내몰 시한폭탄이라는 이유로 우려와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올 봄 세계 5위의 투자은행(우리나라에서는 증권사라는 용어가 더 많이 쓰인다)이었던 베어스턴스가 무너지자 언론은 사상 최대의 금융 재난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메릴린치가 자금난을 견디다 못해 뱅크오브아메리카에 경영권을 넘기고, 인수자를 끝내 찾지 못한 리먼브라더스는 파산을 신청하는 길을 선택했다. 증권업계 부동의 최강자 골드먼삭스와 모건스탠리마저 전업 증권사의 길을 포기하고 상업은행(예금을 받아 대출을 행하는 일반은행을 지칭하는 용어다) 업무를 병행하겠으니 긴급 자금을 지원해 달라는 굴욕적인 요구를 '은행들의 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하게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투자은행들이 사실상 정상적인 사업을 벌일 수 없게 된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대형 투자은행 한 곳이 무너졌을 때도 엄청난 금융 사건이라고 받아들여졌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번의 금융 위기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상상이 갈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위기의 파도는 세계 최대의 보험사라는 AIG까지 침몰시켰다. 월가에 설치된 시한폭탄이 마침내 터진다면 미국의 금융 시스템 자체가 붕괴할 수도 있다.

▶ 규제가 시한폭탄을 만들었다고?

이 시한폭탄을 설치한 주범은 누구인지, 이 시한폭탄이 터질 경우 얼마나 큰 폭발이 일어날지, 이때 전 세계에 미칠 파장은 어떨지, 이를 예방하기 위해 시한폭탄을 해체하려면 어떤 방법과 절차를 동원해야 할지 등을 놓고 뜨거운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상의 수많은 고수들이 나름의 주장을 펼치는데, 금융을 이해하는 안목을 키워주는 내공 있는 글들도 많은 반면, 엉뚱한 주장도 눈에 띈다. 금융위기의 원인을 '지역재투자법(Community Reinvestment Act : CRA)'이라는 '시대 착오적' 규제에서 찾는 주장이 그것이다.

CRA는 해당 은행이 위치한 지역에 자금을 제공하도록 유도한다는 목적으로 제정된 일종의 금융규제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은행은 매년 지역의 금융 수요에 얼마나 부응하고 있는가를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하며, 금융당국은 인수 합병이나 신규 지점의 개설 허가 여부를 판단할 때 이 실적을 반영한다.

보수 진영의 대표 잡지 <내셔널리뷰>를 비롯한 미국의 여러 우파 논객은 이번 금융 위기의 일차적 진원지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주택 담보 대출의 부실화에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처럼 무리한 대출이 일어난 이유가 은행들의 팔목을 비트는 규제에 있다고 주장한다. 급진적인 좌파 단체의 활동가들이 민주당을 부추겨 정치 논리에 의해 금융 규제가 행해졌고, 합병을 시도할 때 불이익을 입지 않으려는 은행들이 할부금 낼 형편조차 안 되는 낙후 지역의 저소득층들에게 손해를 감수하고 대출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게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CRA 규제가 없었다면 사상 초유의 금융위기도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에는 대단히 허점이 많다. 진보 노선의 잡지인 <아메리칸프로스펙트>나 여러 경제학자들은 CRA의 경우 1977년에 제정이 되었으며 이번에 문제가 된 서브프라임 부실 사태는 2007년에 일어났다는 점부터 지적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마치 최근에 새로 생겨 무분별한 대출을 유도했다는 잘못된 인상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진실은 오히려 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2004년에 들어서 부시 행정부가 중소 규모의 은행들에는 CRA 적용을 면제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완화했으며 서브프라임 대출은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CRA는 은행을 대상으로 한 법률인 반면 대부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CRA 규제와는 관계가 없는 주택담보대출 전문회사에 의해 제공되었다는 점도 거론된다.

이처럼 CRA 책임론은 사실관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점에서 허구적인 담론이다. 하지만 이것이 안고 있는 보다 근본적인 오류는 최근의 금융위기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그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저신용 주택담보대출 전문회사, 초대형 투자은행, 헤지펀드, 보험사 등 다양한 금융기관들이 복잡하게 얽힌 현대 금융의 그물망 속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 위기의 진짜 주범은?

<이코노미스트>의 진단에 따르면, 금융 위기의 씨앗은 금융의 비중이 커진 1980년대에 뿌려졌으며, 금융 위기의 뇌관은 금융이 실물경제로부터 본격적으로 독립하던 2000년대 초반에 장착되었다. 1980년대 초만 해도 미국 전체 기업 수익 중 10%에 불과하던 금융 부문의 수익은 2007년에는 40%로 늘어났으며, 같은 기간 중 금융업의 시가총액 비중도 6%에서 19%로 커졌다. 그럼에도 지난해 금융업이 전체 기업의 총부가가치에서 차지한 비중은 15%, 민간 고용에서 차지한 비중은 5%에 불과하다. 이는 금융업의 이러한 수익 증가 추세가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그간의 눈부신 성장세가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두 단계를 밟으며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첫 번째 단계의 고수익은 자산 가격 상승이라는 견고한 기초 위에서 진행되었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2000년까지 유례없는 강세장이 연출되었다.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길들이는데 성공하면서 금리가 떨어지고 주식과 채권 등 자산 가격이 상승했다. 기업 구조 조정·임금 인하·정보기술 혁명 등으로 기업의 수익이 크게 상승했고, 주식·채권·현금 등으로 구성된 일반적인 투자 포트폴리오의 연간 수익률도 예전의 4배에 가까운 실적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들도 높은 수익을 향유할 수 있었다.

2000년을 기점으로 닷컴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미국 금융업의 영업 환경은 크게 변화하게 된다. 소비자 지출, 총투자, 수출의 증가세가 크게 둔화되면서 1950년대 이래 사상 두 번째의 경기 침체를 겪게 된다. 하지만 미국의 투자은행은 이처럼 실물경제의 기반이 취약하게 되었음에도 오히려 사업을 확대하는 길을 선택한다.

투자은행 본연의 임무는 실물경제 활동과 관련해 발생할 것으로 기대되는 미래의 현금 흐름을 근거로 금융증서, 곧 유가증권을 발행하고 유통시키며 관리하는 것이다. 투자은행업 고유의 사업 모델에 따르면 실물경제 악화는 투자은행의 수수료 수입 감소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2000년 이후 투자은행은 유동화증권과 파생상품을 대대적으로 이용하는 한편 차입과 자기계정 거래를 공격적으로 확대하면서 중개인 역할은 물론 그 스스로 투자자가 되는 방향으로 사업 모델을 전환한다. 그 결과 기존의 수수료 수입에 더해 막대한 투자 수입까지 챙김으로써 오히려 수입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실물경제의 제약을 넘어서까지 사업을 확대한 것이야말로 오늘날 5대 대형 투자은행의 연쇄 부실을 가져온 직접적 계기였던 것이다.

한편, 뉴욕대의 누리엘 루비니와 프린스턴대의 폴 크루그먼은 '그림자 금융 시스템(shadow banking system)'이라는 용어를 동원해 이번 사태의 뿌리를 20년 전으로까지 소급해 들어간다.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예금을 보호해주는 대신 예금은행에 대해서는 차입 및 위험과 관련해 규제를 가했다. 그 결과 높은 수익을 추구하던 많은 금융기관은 예금은행의 길 대신 그림자 은행 시스템 속에서 성장하는 길을 선택했다. 투자은행, 헤지펀드, 사모펀드, 구조화투자기구, 주택담보대출기관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은행의 경우 예금보험이나 최종대부자로서의 중앙은행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유동성 위기의 위험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하지만, 그림자 은행 시스템의 금융사들에게는 이러한 방화벽이 없다. 그런데도 이들은 사업을 펼치는 과정에서 은행에 비해 높은 차입 의존도(금융 용어로는 레버리지가 높다고 한다)를 기꺼이 감수한다. 레버리지가 높을수록 자기자본 수익률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택의 이면에는 투자한 자산의 가치가 떨어질 경우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정반대의 상황이 도사리고 있다. 그럼에도 앨런 그린스펀 연준리 의장 등 금융 감독자들은 헤지펀드나 투자은행에 대한 규제가 취약한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복잡한 유동화증권과 파생상품으로 무장한 그림자 금융 기관들이 전통적인 은행에 비해 위험의 분산과 축소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설령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시장이 과도한 위험 부담에 대해 규율을 행사할 것이며, 나아가 이들이 탐욕에 눈이 멀어 감당할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되더라도 납세자들의 돈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림자 금융 시스템에 속한 금융사들의 위험 선호적 행동은 전혀 규율되지 않았으며 이들의 대출과 투자는 무분별하게 이루어졌다. 증권화를 통해 위험을 타인에게 쉽게 전가할 수 있는 시스템 속에서, 곧 거품의 이익은 내가 얻고 거품이 터질 경우 발생할 손실은 타인이 부담하리라는 기대가 일반적인 시스템 속에서, 투자자들이 위험 신호를 무시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루비니에 따르면, 이러한 시스템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태가 논리적으로 예정될 수밖에 없다. 언젠가는 자산 가격 거품이 터진다. 이때 차입자의 상환 능력에 의심이 확산되면 채무 상환 요구가 본격화된다. 일차적으로는 구조화투자기구나 헤지펀드로 상환 요구가 집중되고 시간이 흐르면 대형 투자은행에까지 상환 요구가 확대된다. 유동화증권이나 구조화증권에 대한 불신이 치솟아 있기 때문에 헤지펀드나 투자은행은 보유 자산을 매각하는데 실패하고 상환 요구에 응하지 못해 결국 부도를 내게 된다. 이는 지난 해 8월부터 오늘날까지 실제로 계속 일어난 현실이기도 하다.

지금 와서 보면 위험은 숨겨졌을 뿐 줄어든 것이 아니었다. 증권화와 파생상품을 통해 자신의 위험을 타인에게 전가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은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으로 변질되었고, 이 오만이 그들을 감당할 수 없는 대출과 투자로까지 내몲으로써 시스템 전체의 위험 자체가 커진 것이다.

▶ 위기의 재발,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이들의 행동은 더 높은 수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기업 논리로 보자면 당연한 선택일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주주나 고객들이 방관만 하고 있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림자 금융 시스템에 속하는 금융사들은 명시적으로는 법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과도한 위험을 만들어냈고 사회적으로 큰 해악을 끼쳤다.

이는 그동안의 경기 규칙에 무언가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투자은행과 헤지펀드의 탐욕과 오만이 시장의 폭주로 이어지는 상황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려면 실효성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월가의 시장 참여자나 자유시장 이념의 신봉자들이 이번 사태의 원인을 CRA 규제 등에서 찾으려는 생뚱한 시도를 했던 것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흐름에 동참하는 상황을 반전시키려 보려는 나름의 대응이었을 터이다.

그런데 미국 현지에서의 논의를 일별해보면 이 규제 강화론 속에는 강경파와 온건파가 미분화된 상태로 뒤섞여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똑같이 규제 강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더라도 강조점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모든 규제 강화론자들이 공유하는 점부터 확인해 보자. 이들은 금융기관에 모든 것을 일임하는 자유방임논리로는 금융 위기의 재발을 막을 수 없으며, 특히 금융시장의 경우 다른 시장과 달리 외부효과가 대단히 크고 가격의 자기 조절 기능 또한 취약하므로 어느 정도의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한다. 그리고 금융 규제의 사각지대를 없애 동일하게 행동하는 기관에 대해서는 동일한 규제가 적용되도록 하자는 데에도 의견이 일치된다. 기존의 금융감독 규제가 이번 위기의 핵심에서는 비켜 있었던 예금은행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투자은행·투자은행 자회사·헤지펀드 등 그림자금융으로 규제를 확대해 보다 광범위한 금융기관들을 모두 포괄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나아가 금융위기의 핵심 원인 중 하나가 과도한 레버리지이었기에, 규제의 초점을 과도한 차입 억제에 맞추고 투자은행이나 헤지펀드의 장부외 거래에 대해서도 강화된 자기자본 규제를 적용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규제 강경파는 금융이란 무한증식을 추구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어 금융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이 충돌할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동원해 사회적 이익에 반하지 않는 방향으로 금융의 본능을 길들이고 순화시켜야 하며, 필요하다면 자유롭고 독자적인 금융 활동에 일정한 족쇄를 과감하게 채워야 한다고 믿는다.

주식거래에 대해서는 0.25%, 신용부도스왑(CDS)에 대해서는 0.02%의 금융거래세를 새로 부여함으로써 생산적인 용도의 금융거래에는 큰 타격을 주지 않은 채 투기적 활동을 효과적으로 제어하자는 주장(경제정책연구센터 딘 베이커), 금융상품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심의위원회를 설치해 위험이 과도하게 높아 인간이 소비하기에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유통을 중지시켜야 한다는 주장(컬럼비아대 조지프 스티글리츠), 금융기관 경영자의 보수를 제한하자는 주장(버클리대 로버트 라이시), 신용평가회사를 공공기관화하자는 주장(<아메리칸프로스펙트> 로버터 커트너)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입장에서 보자면, 금융의 문제는 경제적 차원과 더불어 정치적·사회적 차원에서도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며, 실효성 있는 규제란 정치적·사회적 요구를 담아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규제 강경파가 금융시장의 실패 및 금융에 의한 실물의 지배 가능성에 주목한다면, 규제 온건파는 규제가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에 주목한다. 나아가 이들은 발달된 금융이 사회에 주는 이익은 손실에 비해 훨씬 크며, 금융의 역기능 또한 투명성의 제고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투명성만 확보되었다면 시장 규율이 작동해 이토록 큰 위기로까지는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자발적 선택을 제약하는 사전적 규제의 경우, 자기자본비율 규제와 같은 건전성 규제와 보유 자산 및 영업 활동에 관한 보다 많은 정보의 제공을 의무화하는 규제 등으로 최소화하고, 대신 사후감독을 엄격하게 행할 것을 제안한다.

구체적인 방법론으로는 모든 파생거래 및 이를 위해 맡겨진 담보를 중앙화된 금융결제원에 보고할 것을 의무화하자는 주장, 각 금융사로 하여금 노출된 위험들을 확실히 공시하는 연간 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하자는 주장, 위험자산을 명시적으로 고려하는 방향으로 회계제도를 개선하자는 주장 등이 여기에 속한다(조지메이슨대 타일러 코웬, 캘리포니아 대학(샌디에이고) 제임스 해밀턴, 오레곤대 마크 토마).

▶ 역사적 전환점을 통과 중인가?

1929년 대공황은 미국의 금융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대공황 이전의 자유롭게 방임된 금융이 위기의 주범 중 하나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1933년 은행업과 증권업을 분리시키고 금융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금융개혁법이 시행되었다. 미국인들은 이로부터 40년 넘게 규제된 금융 시스템 속에서 삶을 영위했다.

이번의 금융위기가 대공황 때처럼 금융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뉴욕대 루비니는 그림자 금융 시스템의 종언을 선언했으며, 투자은행이 과거와 같은 높은 수익을 얻는 것은 불가능해졌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일각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번 위기로부터 수익률 극대화를 최고의 가치로 숭배하고 사람들 사이의 연대를 몽상으로 치부하는 잘못된 사회가 다시 정상화될 가능성을 읽어내기도 한다. 미국식 주주자본주의 모델이 퇴조하고 유럽식 이해당사자 모델이 부상할 것이라고 예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무언가 근본적인 변화가 있으리라는 기대(그것이 희망사항이건 근심거리이건)는 성급한 전망일 가능성이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주식시장이 아니라 파생상품과 결합된 신종 채권시장이며, 당장 위협받고 있는 것은 주주자본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그림자 금융 시스템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위기 이후의 향후 금융 시스템의 운명과 사회경제적 질서의 모습은 위기의 수습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좌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월가에서는 구제금융의 방식을 놓고 힘겨루기가 진행 중인데, 몇 가지의 상황 전개가 예상된다. 우선, 거품의 열매를 향유하느라 위기를 발생시킨 당사자들에게 상응하는 책임을 추궁하지 않고 사회가 위기의 비용을 부담하는 방향으로 구제금융이 제공되고, 허울 좋은 미봉책이 위기 재발을 막는 근본적인 대책으로 포장되는 경우가 나타날 수도 있다.

이번 위기의 주범인 투자은행이나 헤지펀드는 '시장 논리상' 중장기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데도 여기에 규제를 추가로 도입하면 금융 산업의 역량은 크게 훼손될 것이라거나 예전에도 거품은 있었으며 금융이란 원래 어느 정도의 거품은 끼게 마련이며 이를 억지로 막으려고 하면 부작용이 더 크다는 주장이 유포되면서 그동안 미국 사회를 지배해왔던 금권정치의 회로가 작동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양식 있는 학계와 시민사회의 발언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 구제금융의 제공과 더불어 온건 규제론이나 강경 규제론이 관철되는 더 바람직한 상황도 기대할 수 있겠다. 온건 규제론이 채택되면 최근 들어 심화된 그림자 금융 방식의 사업 관행에는 적지 않게 제동이 걸릴 것이며, 만약 강경 규제론이 힘을 얻게 된다면 미국식 금융자본주의 모델의 의미심장한 방향 전환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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