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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동북아 시계추에 역행하지 말아야 한다
이정철
정치외교연구센터 / 남북관계와 한반도평화
외부기고
정책보고서
민족화해
2008/07/08
통미봉남?

최근 북미관계의 급진전 추세에 비하면, 남북관계는 제자리걸음 중이다. 북미관계가 진전될 때 남북관계가 이에 동조화(coupling)현상을 보이는 것이 지난 10년의 경험이었던 데 비해, 최근에는 북미관계가 진전됨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도리어 뒷걸음을 치고 있다.

현재 남북관계 경색의 원인이 북쪽에 있다고 보는 것이 통미봉남(通美封南·미국과 통하고 남한은 봉쇄한다)론이다. 이 용어는 1994년 제네바 합의 직후 노재봉 전 민자당 의원이 김영삼 정부 내 온건파들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낸 신조어였지만, 이후 북한의 대남 강경론을 칭하는 수식어가 되었다.

통미봉남론에 대해서는 대남 통일전선론의 다른 형태라든지, 미국에 편승하여 남한과 세력균형을 유지하려는 것이라든지 등의 다양한 해석이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한국의 대북 정책이 미국의 대북 접근법과 분리된 상황 즉, 미국의 대북 포용정책과 한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간에 간극이 존재하던 시기에 나타난 북한의 국면적 대응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정부가 기존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대북 포용정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한미 간의 시차에 대해서 북한이 기계적으로 반응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단위 국가 수준의 정책 선택의 문제, 즉 북한 당국의 의도에 관한 문제를 넘어 탈냉전의 비대칭성이라는 국제관계의 맥락을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90년대 탈냉전 초반기에 적용되던 통미봉남이라는 용어로 현재 남북관계 소강 국면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의 이미지로 현재를 덮어씌우는 낡은 시각이 될 우려가 있다. 지난 두 번의 정상회담 기간 모두 북미관계 역시 우호적 관계였던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도 통미봉남론을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이유일 성 싶다.


‘甲과 乙 정위치론’이라는 발상

남북관계에 협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남북협력에서 절대적 이익이 발생해야한다는 주장과 상대적 이익(relative gain)의 분배가 중요하다는 설이 있다. 전자의 견해는 남북협력이 어떤 형태로든 이익을 발생시키면 그 분배 형태와 무관하게 협력이 이루어진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국가 간 협력에서 이익이 창출되더라도 그 이익의 상대적 분배 과정에서의 우열관계 때문에 협력의 존속 여부가 불가능해 질 수도 있다. 상대적 이익을 강조하는 후자의 견해에 따르면, 남북관계처럼 일방이 무형의 이익을 가져가고 다른 일방이 유형의 이익을 가져가는 관계에서는 이에 대한 계산의 어려움 때문에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수위 시절 이명박 정부의 외교 브레인들 사이에서 ‘갑과 을 정위치론’이라는 용어가 회자되었다고 한다. 한국은 북에 여러 가지 지원을 주는 주체라는 점에서 용역을 발주하는 ‘갑’의 위치에 있고, 북한은 우리로부터 지원을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갑’의 요구에 순응해야 하는 ‘을’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관계가 지난 10년간 거꾸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동 주장의 요지인 듯하다. 북한은 국제 사회의 기본적인 규범을 이해하지 못하고 전형적인 불량국가(rogue state)의 행태를 반복하며 상대국들을 협박으로 굴복시키는 전략을 쓰기 때문에, 이번에 반드시 ‘버르장머리’를 고쳐 퍼주기 논란을 종식시키겠다는 의지가 물씬 풍기는 용어이다.


이유 없는 채찍

신 정부가 국제협력의 논리와 국제 규범을 강조한다는 것은 정국 운영의 철학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국제협력의 논리와 규범을 강요하자면 그 근거가 분명해야 하고 원칙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국제규범의 확립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의 단일 주권성이 존재할 따름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정권의 변화가 국제협력의 원칙의 변화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 내부에서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 정권 교체의 정당성을 국제사회에 강변할 수는 없다. 국제 사회에서 합의된 서명서나 국제관계에서 체결된 조약이 정권 교체 때문에 부정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남북관계를 국제관계의 영역으로 보고 국제 규범을 강조한다면 신 정부는 정권교체에 따른 상황논리를 내세우기보다는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지키는 데 주력해야 한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강조하면 정권의 변화가 (대북)정책의 변화로 나타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일 수 있겠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특수성 보다는 국제 규범과 관행의 준수를 강조한다고 한다면, 정권교체에 따른 정책변화라는 논지는 아무래도 앞뒤가 맞지 않고 왠지 궁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북한 입장에서 예를 들어보면, 신 정부가 6.15와 10.4 정상 선언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국제 규범의 준수를 강조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을까? 한국 내부에서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대한민국 대통령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성명서가 휴지조각이 된다는 것은 여느 국가 관계에서 가당한 일인가를 생각해보면 간단한 일이다.

따라서 북한이 보기에 국제 규범 운운하며 대북 지원에 소극적인 한국 정부의 논리는 이유없는 채찍같이 보여질 가능성이 높다. 채찍이 이유없는 것으로 비쳐진다면 그것은 채찍으로서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상식이다.


상대수익론과 힘의 논리의 한계

사실 신 정부의 대북 정책은 언뜻 보기엔 국제 규범에 따른 협력을 강조하는 듯하지만, 곰곰이 곱씹어보면 전형적인 상대수익의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무형의 이익, 즉 평화나 안보 리스크 관리 등과 같은 것 외에도 추가로 북한으로부터 ‘갑’으로서의 예우를 명시적으로 받아야겠다는 뜻이다. 사실 국제관계론의 주류 견해는 후자의 견해 즉 상대수익이라는 (신)현실주의의 논지를 찬성하고 있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 브레인들의 이 같은 견해가 특별히 문제시될 이유는 없다. 특히 국제 정치에서 위신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실체로 인정받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이런 논지는 국제정치이론에 매우 충실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그 발상은 현실주의적이나 그 방법은 현실성이 없다는 점이다. 일관성 있는 힘의 논리가 뒷받침되어 있지 못하고 게다가 국제사회도 그럴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북한보다 더 많은 상대 수익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협력을 깰 수도 있는 배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대해서 온건하지만 무시(benign neglect) 정책을 쓰는 것은 이런 논리라고 봐줄만 하다. 그런데 이같은 대북 무시정책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해서 우리 정부가 레버리지를 갖고 있거나 직접 힘을 과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북한에 대해서 우리가 행사할 수 있는 레버리지라는 것은 쌀 지원이나 비료 지원을 중단하고, 나아가 금강산, 개성 관광을 통해 얻게 되는 북한의 달러 수익을 중단시키는 등일 테다. 그런데 이런 레버리지를 다 사용한다고 해서 북한이 굴복할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우리 정부는 이미 쌀과 비료 지원을 중단했지만 북한의 반응은 더욱 차갑기만 하다. 더 나아가 금강산이나 개성 관광을 중단시키는 방안도 있겠지만, 이는 쌀, 비료 지원과는 다른 논리가 작동된다는 점은 참고 사항이다. 즉 관광은 우리 국민의 후생을 높이는 것으로 이를 제약하는 것은 국내 시민사회의 논리 뿐 아니라 시장의 논리와도 배치된다는 점이다. 관광의 무기화가 정부의 의지만으로 섣불리 검토될 수 없는 이유이다.

더 큰 문제는 국제사회의 변화이다. 한국이 북한에 대해서 힘의 논리를 사용할 경우 국제사회가 그 압박에 동참해야 할 텐데, 최근 북미관계는 이런 한국 정부의 흐름과 왠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에 적용해 온 적성국교역법을 폐지하고 의회에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통보하였다. 또한 미국은 북한에 쌀 50만 톤을 지원하기로 하였고, 심지어는 냉각탑 폭파 비용 250만 달러를 현금으로 주기로 하였다고 전해진다. 한국 정부의 대북 레버리지인 쌀과 비료 지원 중단의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한미동맹을 배신해서가 아니라, 동북아 국제 정치가 힘대 힘의 대결을 넘어 협력을 통한 상호 이익 창출의 시대로 뛰어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불량국가인 북한 역시 이 구도에서 역외자가 아니라는 것이 지난 6자회담이 보여준 성과이다. 이 다자간(multilateral) 협력의 장에서는 광범위한 상호주의(diffuse reciprocity)에 따른 이익교환이 요구된다. 근시안적인 상대이익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거시적 이익 교환이 중시된다. 이 같은 상황 전개야말로 한국 정부의 상대 수익 논리가 동북아의 시계추에 역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6자회담 내의 남북관계라는 비극

사실 남북관계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정상적 일원이 되기 전까지 한국의 독점적 관할권이 인정되는 분야이다. 이는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와 4강 외교를 균형적으로 전개한다면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구조적 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상대수익 문제에 따른 힘 대 힘의 논리로 부딪히면서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6자회담과 별개의 남북관계라는 것은 상상하기가 어렵게 된다. 따라서 한국은 6자회담 틀 내에서 1/n로서만 역할하게 될 것이고, 별도의 권리 없이 의무만 부담하는 수동적 관계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핵문제의 당사자로서 한국이 6자회담에 비협조적일 수는 없다. 남북관계 경색을 이유로 한국이 부담하게 될 의무를 벗어던질 수는 없다는 뜻이다.

결국 북한으로부터 더 많은 상대 수익을 얻기 위한 정당한(?) 노력이 동북아라는 큰 구조의 변화에 편승하지 못하면, 우리가 얻게 될 잠재적 이익 중 많은 것들을 잃고 더 많은 상대 손실에 안타까워할 수도 있다. 시간이 항상 우리 편인 것만은 아니다. 자칫 후손들에게 자존심 싸움으로만 비쳐진다면 상대수익이네 (신)현실주의네 뭐네 하는 거창한 이론도 한낱 인텔리 당파쟁이들의 말장난으로만 평가받을 따름임을 명심하자.

www.kcrc.or.kr/?doc=bbs/gnuboard.php&bo_table=z_special&wr_id=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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