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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가 길을 묻다?
이정철
정치외교연구센터 / 남북관계와 한반도평화
외부기고
정책보고서
민추본
2011/04/29

최근 R2P 개념이 부각되고 있다. 언뜻 새로운 컴퓨터 용어 같지만 사실은 “보호할 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의 약어로 리비아 폭격의 근거가 되는 논리이다. 인도적 개입(humanitarian intervention)론의 동의어로 봐도 무방하겠다. 독재 국가의 인권 침해를 막고 시민을 보호하는 데 국제사회가 공동의 책임이 있으므로, 개입이 내정간섭이라는 독재자의 낡은 방어 논리를 넘어서는 근거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개념이라 볼 수 있다. 카다피의 독재와 시민군에 대한 학살을 막기 위한 유엔 안보리의 결의와 뒤이은 미, 영, 프를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의 ‘카다피’ 폭격이 이에 기반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세상 이치에는 양면이 있듯이 R2P도 그러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만하다. 새천년의 세가지 전쟁인 아프칸, 이라크 그리고 리비아에서 공히 나타나는 혼란과 내전의 지속은 초기 개전의 거창한 명분을 삼키기도 남음이 있다. 이같은 양면을 큰 이익과 작은 이익의 교환이라는 차원에서 설명한다면 전쟁은 물론 충분히 설득력이 있고 앞으로 10년- 20년이라도 지속되어야할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동안 스러져간 무고한 생명의 관점에서 보면 그 잘난 ‘정의의 전쟁’ 때문에 빚어진 수많은 주검들을 작은 이익에 비유하고, 반테러니 대량살상무기 폐기니 심지어는 인권이라는 ‘대의’를 큰 이익에 비유하는 것이 허무하기 짝이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묵가(墨家)의 반전론

사람을 죽이는 것은 복숭아를 훔치는 것보다 죄가 더 무겁다. (그래서) 한 사람을 죽이면 그것을 불의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크게 나라를 공격하면 그 그릇됨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칭송하면서 이로움이라고 한다. 이러고서도 의와 불의의 분별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공격 전쟁을 반대한 묵자의 비공(非攻) 편의 한 구절을 신영복 선생의 글을 빌어 옮겨보았다. 수천 수만명을 살해하는 전쟁에 대해서는 그것을 비난하지 않고 칭송하고 후대에 기록을 남기고 찬사하는 전국시대의 거대한 관념체계에 대한 고발인 셈이다.

지난해 모 신문사의 논설위원이라는 자가 서울 시민이 3일만 참으면 북한의 장사정포 공격을 무력화하고 북한을 극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편적이 있어 화제가 되었다. 2000년 전에 집단 자살로 마감한 묵가 집단의 애절한 반전 논리와는 참으로 반대되는 논법이 아닐 수 없다. ‘전체로서의 서울 시민’이 이기기 위해서 ‘참는다’라는 단순한 수사의 이면에는 ‘어떤 서울 시민’은 죽고 ‘어떤 서울 시민’의 재산은 붕괴된다는 논리가 깔려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한가한 자가 있어 그 ‘어떤 서울시민’에 포함될 확률이 많은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나누어 각자에게 통보해 준다면 어떨까?
대북 전단에 대한 북한의 격한 반응이 나타난 후에 접경지대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대북 전단 날리기라는 ‘정의’를 저지하는 현상을 보면 민초들에게는 그런 식의 ‘정의’의 실현이 생사문제에 비해 그리 중요하지는 않은 듯하다.


공리주의라는 허상

사실 최근 유행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담고 있는 중요한 메시지 중의 하나가 공리주의 즉 이익의 거래 논리에 대한 반론이다. 큰 이익과 작은 이익의 교환이라는 공리주의가 당사자의 죽음이라는 상황 앞에서 계산 가능한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이다. 마치 맹자가 양혜왕에게 “하필 왕께서는 이익을 말하십니까”라고 반론을 던지고 ‘의(義)를 강조한 것도 ‘정의의 전쟁’보다는 반공리주의의 훈계로 읽고 싶은 게 오늘의 심정이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犬有佛性乎)라는 화두 역시 이익 교환론에 대한 또 다른 확장적 비판론이다.
요컨대 이익은 이익일 뿐이요, 정의는 정의다. 아무리 이익의 이름으로 정의를 설명하려한들 그것은 한낱 거래일뿐이라는 것이 샌델과 맹자와 묵자의 논리이다.


카터가 사르코지에게 길을 묻는다면?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했다. 지금 시점에서는 그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의 카터는 한반도 위기의 해결사였지만, 오바마 시대의 카터는 어째 시원치 못한 노객이다. 지난 해 평양에서는 김정일 위원장도 면담치 못하고 힘겹게 귀국기에 올랐고, 올해 쿠바에서도 뾰족한 성과없이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2011년 노정치인 카터가 다시 평양을 방문했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그의 방문을 둘러싸고 한국 정부는 불편한 기색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개인적 방문임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

1994년 카터의 방북이나 1998년 페리 전 국방장관의 방북이 한반도의 평화 기운을 드 높였다면, 2002년 미 정부단의 방북은 한반도에 2차 핵위기라는 대 재앙으로 이어졌다. 미국 고위급의 방북이 반드시 길조인 것만은 아닐 수 있음을 역사는 말해준다.

2011년 카터는 누구에게 길을 물을 것인가?
느닷없이 리비아 폭격을 주도한 사르코지에게 길을 물을까? 그래서 좌파 진영의 일부 논객들마저 찬사해마지않는 프랑스식 리더십과 R2P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1994년의 카터 바로 자기 자신에게서 길을 찾을까? 그래서 한반도의 위기를 진정으로 해소하는 평화의 길을 열 것인가?
전자의 길이 북한을 압박하는 것이라면, 후자의 길은 남한을 압박하는 것이다. 카터는 제 3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어떤 경우에도 전쟁만은 안된다는 묵자를 만나게 해줄 방법이 없을까?
www.unikorea.or.kr/pds/column/view.asp?article_id=47&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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