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어제 기자간담회에서 추가경정예산 30조원의 재원을 국채를 발행하여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채를 발행해서 어디다 팔 것인가는 얘기하지 않고 있다.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몹시 궁금하다. 지금 시점에서 국채를 발행하면 이를 팔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러기가 몹시 어렵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올해 20조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예산안을 이미 통과시킨 바 있다. 그러나 이는 3% 안팎의 경제 성장률을 전제로 한 것이며 만약 성장률이 윤증현 장관의 말대로 마이너스 2%가 되면 10조원 규모의 적자국채 발행이 늘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여기에 추경 국채 30조원을 더하면 올해 총 60조원의 적자국채를 시장에서 소화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60조원 규모의 국채를 시장에서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이를 사갈 수 있는 주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마땅히 떠오르는 주체가 없다. 자본확충을 해야 하는 국내금융기관들은 60조원에 달하는 장기 국채를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외국인투자자들이 사갈 수 있지만 국제 금융시장이 동요하는 상황에서는 이들은 언제 국내금융시장을 떠날지 알 수 없다. 외국인 투자자의 채권보유 증가는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금융 불안을 증폭시킬 따름이다.
정부가 대량의 채권을 소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이를 시장가격보다 훨씬 싸게 파는 것이다. 같은 얘기지만 금리를 올려 발행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정도 채권을 소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채권의 가격이 떨어지면 이는 다른 채권들의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채권들의 가격도 떨어질 것이며 특히 일반회사가 발행하는 채권의 가격은 더 떨어질 것이다. 채권 가격이 떨어지면 일반회사의 채권발행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이리하여 일반회사가 발행하는 채권의 자리를 국채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채권의 값이 떨어지면 이는 금융기관의 자기자본 비율을 떨어뜨려 금융기관들로 하여금 대출회수에 나서지 않을 수 없도록 할 것이다. 결국 국채발행 증가는 기업들의 자금줄을 더욱 죄는 효과를 갖기 때문에 정부가 시장에 발행국채를 모두 내보낼 수는 없다는 뜻이다.
정부가 대량의 채권을 소화시킬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이를 한국은행이 인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내고 그걸로 국채를 인수하게 하는 것이다. 정부는 틀림없이 이 방식을 사용할 것이다. 정부는 60조원 다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추경예산을 위한 30조원은 한국은행이 인수하도록 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한국은행이 인수하는 방식으로 국채를 발행하면 화폐 남발로 원화 가치가 크게 떨어질 것이다. 물가가 크게 오를 것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9월 이후 화폐 발행량을 크게 늘려왔다. 이 때문에 금융기관에는 지금 단기 자금이 넘쳐나고 있다. 또한 한국은행은 올해 2월 25일 이른바 “은행자본 확충 펀드”에 10조원 규모의 자금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것만으로도 앞으로 기록적인 물가상승이 예고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정부가 한국은행 차입을 늘리고 국채까지 인수시키면 그야말로 원화의 가치는 추풍낙엽일 것이다.
원화가치의 폭락은 환율의 폭등을 의미한다. 최근 몇 달 동안 환율이 올랐던 이유는 환국은행이 그 기간에 시중에 돈을 너무 많이 풀었기 때문이다. 국채 인수를 통해 추가적으로 돈이 풀리면 그만큼 환율이 상승할 것이다. 중소기업 키코 손실, 의사들의 엔화 대출 손실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결론적으로 추경예산용 국채발행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정부는 지금 상황에서 국채발행 증대가 의미하는 위험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은행법과 방송법을 개정하여 은행과 방송사 지분의 일부를 외국자본에 넘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채발행을 조금이나마 줄이면서 지분매각을 통해 외화도 확보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지분 매각은 헐값논쟁에 휘말릴 뿐 현명한 재원마련 수단이 아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추경예산을 얘기하기에 앞서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명확히 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계속 세금을 깎아주면서 화폐 남발을 통해 이를 메우려고 하는 것은 책임 있는 공당의 자세가 아니다. 예산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만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