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는 치솟는 집값을 잡고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종부세 를 근간으로 하는 부동산 세제개편을 시행해 왔다. 그동안 투기세력과 보수 언론 등 이른바 부동산 세력들이 종부세를 ‘세금폭탄’이라며 흔들고 반대했지만, 종부세는 대다수 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시행 3년째를 맞고 있다. 올 들어 부동산 투기도 한풀 꺾여가고 있다.
남은 문제는 이 정책을 얼마나 일관성 있게 유지하느냐에 있다. 부동산 시장은 작은 정책 변화 가능성에도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종부세제의 근간은 물론, 미세한 정책내용에도 손을 대지 않고 변함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천명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한나라당 대선 주자로 나선 이명박 전 시장이 지난 9일 내건 ‘서민을 위한 조세개혁’ 공약을 보면 그래서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 전 시장은 현행 국세인 종부세와 지방세인 재산세·자동차세 등을 묶어 지방세인 ‘재산보유세’로 신설·통합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내걸었다. 이렇게 되면 종부세란 세목 자체가 사라진다. 세율이 변동되므로 사실상 종부세를 폐지하자는 것과 다름 없다.
종부세 폐지 공약…시간 거꾸로 돌리겠다는 발상
이 전 시장의 공약대로 종부세가 폐지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불문가지다. 다시금 투기심리가 고개를 들고 집값이 치솟아 부동산 시장 불안이 재연될 것이다. 바로잡았던 조세형평에 금이 가고, 지역간 재정 불균형이 심화될 우려도 있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겠다는 발상이다.
종부세는 투기적인 부동산 보유 심리를 억제해 고질적 투기수요를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후진적인 우리나라 보유세 제도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우리 사회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현한다는 의미에서도 점차 국민들의 합의가 이뤄지고 있는 과정이다. 최근 부동산 시장이 안정 기조를 보이고 있는 것은 종부세의 강력한 투기억제 효과와, 정부의 부동산 관련 정책이 변함없이 추진될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어렵게 도입되어 정착 단계에 있는 종부세 제도를 폐지하면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흔들려 부동산 투기가 재연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겨우 안정을 찾기 시작한 부동산 시장이 흔들려 집값이 오르면 서민들만 눈물을 흘릴 것이다. 이 전 시장이 이를 ‘서민을 위한 공약’이라고 주장한 것은 국민을 우습게 보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 전 시장은 자신의 조세개혁 공약이 ‘종부세 폐지가 아니라 세목 통합이어서 종부세 기능이 계속 작동할 것이며 투기가 재연될 우려가 없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과 세제정책에 대한 이해가 크게 부족하거나 억지 주장을 변명하려는 어이없는 발언이다.
전국 부동산 세대별 합산 어려워져 누진세율 적용 불가능
현행 종부세의 가장 큰 특징은 전국의 부동산을 세대별로 합산해 누진과세를 적용하는 것이다. 이를 지방세에 통합하면 전국 부동산의 세대별 합산이 어려워지고 이에 따라 누진세율 적용도 불가능해져 사실상 엄청난 세금 경감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결국 부동산에 대한 투기적 보유심리를 되살리는 것이다. 이 전 시장의 조세개혁 공약이 나오자마자 일부 다주택자들이 주택처분을 미루고 버티기에 들어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종부세 폐지가 지역재정의 불균형을 불러 올 것이란 점도 심각하다. 국세로 거둬 들인 종부세는 수도권에 비해 발전이 느리고 부동산 가격 상승도 낮은 지방자치단체에 배분해 지역발전을 위해 지원되어왔다. 지난해 지방교부세법에 따라 230개 자치단체에 배분한 균형재원은 모두 8770억원이며 올해도 1조7298억원을 지자체에 지원할 예정이다. 이 전 시장의 공약대로 종부세가 지방세로 통합되면 결국 국세를 통한 지자체 지원금이 끊기고 각 지자체는 각자가 거둔 지방세를 통해 재정을 충당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재정이 어려운 지자체와 넉넉한 지자체의 재정 격차는 더욱 커져 지역간 재정불균형 심화는 커지게 된다.
이달초 국회는 서울시의 자치구간 재정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재정여건이 좋은 강남권의 자치구에서 열악한 강북지역 자치구를 지원하도록 공동재산세를 도입한 바 있다. 이런 마당에 종부세를 지방세로 통합해 이를 해당 지역으로 몰아주자는 것은 시대역행적 발상이다.
2%에 부과되는 종부세 폐지, 누구 위한 공약인가
또 종부세를 지방세로 통합했을 때 ‘보유세 강화·거래세 완화’라는 종부세의 취지와 원칙이 지켜질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지방의 단체장이 지역주민의 조세저항을 피하기 위해 보유세 강화에 미온적일 수 밖에 없다. 지난해 서울 강남 지역 지자체들이 보유세의 일종인 재산세의 탄력세율을 적용해 세부담을 경감시켰던 경험을 기억할 것이다.
1가구 1주택 장기보유자에 대한 종부세 감면 공약 역시 조세형평성과 종부세의 근본 취지를 훼손하는 발상이다. 이 전 시장의 부동산 관련 공약 주요 내용이 이처럼 종부세의 투기억제 기능을 무력화하는 것인데도 종부세 폐지가 아니라는 주장은 자가당착이다.
종부세는 우리나라 전체 세대의 2%정도인 고가 주택보유자에게 부과되는 세금이다. 종부세 대상자 가운데 64%정도가 다주택자들이다. 종부세를 통해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집값을 잡으면 대다수 서민들의 고통은 그만큼 줄어든다.
겨우 안정 기조를 찾아가는 종부세를 폐지하겠다는 정책은 과연 누구를 위한 공약인지 묻고 싶다. 올해 12월 있을 대선은 모든 국민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이지, 부동산 부자를 위한 대통령이나 강남구의 대표를 뽑는 선거가 아니다.
cwd_종부세.hw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