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전쟁 이제는 끝내자]②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
정전체제 이용 독재정권 정당화
2007-07-25 오후 4:25:56 게재
2007년~2008년은 한반도 역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던 한민족은 또 다시 역사의 준엄한 물음에 답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전쟁이냐 평화냐. 해묵은 이 질문에 이제 답해야 할 때가 됐다.
내일신문은 7월 27일 정전협정 54주년을 맞이해 평화의 시대를 열기 위한 ‘평화의 달’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선거때면 간첩사건·대북사건 터져 … 남북한 소모적인 군비경쟁
# 상황 1
2002년 6월 22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모였다. 한일 월드컵에 출전해 4강을 놓고 결전을 벌이던 한국-스페인전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사진 ①)
서울 시청 앞만이 아니라 거리 응원전이 펼쳐지는 전국 어디든 똑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무엇보다 이들 응원단에는 예전과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붉은 티. 붉은 악마라는 국가대표 서포터즈의 공식 티를 모두 입고 있었던 것이다. 수천만명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모두 붉은 티를 입고 응원을 벌이는 장면은 세계 모든 축구팬들에게 화제가 됐다.
그 날 한국은 스페인을 꺾고 4강에 진출했다. 비록 홈팀이라는 이점도 있었지만 이날의 승리는 국민들에게 엄청난 자신감을 안겨줬다. 세계로 웅비하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때 그 붉은 티는 또 하나를 상징하고 있었다. 레드컴플렉스의 극복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죄악시되었던 붉은 색에 대한 극복. 그것은 50년 동안 우리 내부를 옥죄던 정전체제를 온 국민이 함께 뛰어넘는 사건이었다.
# 상황 2
2002년 6월 13일 경기도 양주군 지방도에서 두 명의 여중생이 미군의 장갑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사진 ②)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신효순, 심미선 양은 친구 생일잔치를 위해 갓길로 가던 중이었다.
주한미군은 유족들에게 자신들은 훈련규정을 어긴 일이 없으며 ‘시야제한과 통신장애로 발생한 사건’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 사건은 유족들에 의해 불이 당겨지고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전 국민의 공분을 자아냈다. 장갑차 전문병들은 ‘30m 전방을 볼 수 없는 장갑차는 없다’는 말로 이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후 촛불시위가 시작됐고 불평등한 주한미군 소파(한-미 주둔군 지위) 협정에 대한 범국민적 문제제기로 이어졌다. 정전체제가 빚은 비극이었다.
# 상황 3
2002년 6월 29일 서해 연평도 14마일 해상에서 남북한 해군 사이에 교전이 있었다.(사진 ③)
북방한계선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이 우리 참수리호 357호 함정에 선제공격을 가해온 것이다. 결국 이날 남북한군은 서로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해 참혹한 피해를 입었다.
북한 경비정 1척에서 화염이 발생하자 교전은 25분만에 끝이 났다. 이날 교전으로 우리측은 6명이 전사했고 18명이 다쳤다. 북한 역시 3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이 중 12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방한계선을 두고 벌어진 해상 교전은 이미 1999년 6월에도 발생한 바 있었다.
한쪽에서는 온 국민이 거리에 나서 월드컵을 즐기고 다른 쪽에서는 같은 민족 젊은이들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돌리며 죽이고 죽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정전협정은 말 그대로 전쟁을 잠시 쉬고 있는 상태일 뿐이었다.
◆대선 6개월을 앞두고 발생한 세 가지 사건 = 2002년 6월은 대통령 선거를 6개월 앞둔 상태였으며 남북정상회담이 있은 지 2년이 지난 상태였다. 대선을 앞두고 남북문제를 중심으로 이념대결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해 6월 1주일 차이로 일어났던 세 가지 사건은 정전협정이 우리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을 규정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월드컵에서 보여준 레드컴플레스 극복은 국민들 속에서 정전체제의 극복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런 기쁨의 바로 옆에는 어린 여동생과 딸이 무참하게 죽어갔음에도 손도 쓸 수 없었던 현실이 놓여있었고 또 다른 곳에서는 우리의 아들과 형제가 같은 민족의 손에 죽어가는 아픈 현실이 있었다.
정전체제는 밑으로부터 극복되기 시작했지만 정전체제의 강력한 힘은 관성처럼 진행형이었다.
◆멈출 수 없는 군사력 증강 =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은 말 그대로 전쟁을 잠시 쉬는 상태를 말한다. 이 때문에 양측은 정전협정 이후에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승리하기 위해 끊임없이 대결 반목해왔다.
국민들의 삶과는 무관하게 양측 모두 막대한 국방비를 전쟁 준비에 쏟아 부었다. 막대한 국방비는 양측 모두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양측 국민들은 불필요한 경쟁에 힘을 분산시키며 또 다른 세계와의 경쟁을 감수해야 했다.
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06년 우리나라 국방비는 219억달러로 세계 11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역시 주민이 굶주림에 빠져있어도 국방비를 줄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서로의 발목을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는 끊임없는 대결의 역사가 정전협정의 역사였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조성렬 신안보연구실장은 “정전협정은 멈출 수 없는 군비경쟁을 남북 모두에 강요했다”며 “앞으로 남북미 간의 종전선언이 이뤄지더라도 당장 군축보다는 휴전선에서 무력을 후방으로 배치하는 배치 제한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주둔 배경이 된 정전협정 = 정전협정은 주한미군 주둔에 배경이 되고 있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한민군은 유엔사의 이름으로 주둔했었다. 특히 군사작전권을 주한미군 사령관이 갖게 되면서 주한미군은 이후 한국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 물리력으로 작용했다.
이런 주한미군의 힘은 불평등한 소파 협정으로 이어졌다.
정전협정이 폐기될 경우 유엔사는 해체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비록 숫자는 300여명에 불과하지만 유엔사 해체는 동아시아에서 결코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정전협정 이후 주한미군이 철수하거나 최소한 주한미군의 성격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김선일 사무처장은 “미국은 주한미군이라는 물리력을 바탕으로 한국의 정치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왔다”며 “이런 미국의 한반도 간섭은 정전협정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병영화 된 한국사회 = 정전협정은 한국 사회를 전시상태로 만들었다.
모든 국민들은 항상 전쟁을 대비해 군사훈련을 해야 했고 항상 긴장 속에 전쟁을 대비해야 했다.
이 때문에 자유나 민주주의는 배부른 소리로 배척당했다. 전쟁 중인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불가능한 가치였다.
독재자들에게 정전협정은 국민들에게 휘두르는 전가의 보도였다. 1974년부터 1987년까지 대통령은 체육관에서 뽑혔다. 전쟁 중인 나라의 국민은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를 포기해야 했다. 선거때만 되면 간첩사건 등과 같은 대북 사건이 터져나왔다.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라는 사실이 끊임없이 세뇌됐다.
이 시대는 색깔조차 이념에게 덧칠을 당했다. 붉은 색은 절대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색깔이었다. 깃발도 단체복도 빨간 색만은 절대 안됐다.
코리아연구원 서보혁 기획위원은 “과거 권위주의적 정권은 정전협정을 이용해 독재를 정당화했다”고 지적했다.
서 위원은 “최근 우리 사회 내부의 정전체제가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며 “다만 최근 평화체제로의 이행이 분단 안정형이 아닌 통일지향을 명확히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 윤여운 문진헌 백만호 이경기 전예현 김은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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