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엎드린 한국과 저항한 일본
조성렬 박사, 한일 양국의 '전략적 유연성' 협상 비교 지적
김태경(gauzari) 기자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있어 한국은 겉으로만 시끄러웠을 뿐 실제로는 미국의 요구를 다 받아들인데 비해, 일본은 표면적으로 조용했지만 내용적으로는 일부만 수용하는 등 양국의 태도가 상당히 달랐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조성렬 국제문제조사연구소 국제관계센터장은 21일 '새로운 코리아 구상을 위한 연구원'(코리아연구원)에 기고한 '주일미군의 사례가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에 주는 시사점'이라는 글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조 센터장은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한 지난 1월의 한미 양국 외무장관의 공동 성명에는 '한미 동맹'만 눈에 띌 뿐 참여정부의 국정과제인 '동북아안보협력'은 보이지 않는다"며 "그동안 참여정부가 이룩해 놓은 동북아 평화와 안전의 성과들이 훼손될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반대로 관철되지 못한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조 박사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시기인 지난 2002년 말부터 각각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한 협의를 시작했다.
미일 양국은 일단 원론적인 합의를 했으나 주일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내용에 들어가서는 상당한 이견을 보였다.
미국은 우선 워싱턴주 포트루이스에 있는 제1군단 사령부를 일본의 자마 기지로 옮긴 뒤 중앙아시아-벵골만-동남아-동해에 이르는 이른바 '불안정한 활꼴'을 담당할 '(군단급)광역사령부'(UEy)의 임무를 규정하고 지휘관으로 4성 장군을 임명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내부 논란이 있었으나 미일 공동 안보의 범위를 필리핀 이북지역으로 제한하는 '미일안보조약'의 제 6조 '극동조항'을 들어 난색을 표했다. 결국 지난해 4월 말 미 정부는 기존 입장에서 후퇴해 자마기지사령부를 애초 UEy에서 'UEx'(사단급 운용부대)로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미국은 주일미군의 작전 지원을 위해 괌에 있는 13공군 사령부를 미 5공군사령부가 있는 요코다 기지로 통합하려고 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제1군단 사령부의 경우와 같이 미일안보조약 제6조를 근거로 반대했다.
결국 미 정부는 제13공군 사령부를 요코다기지로 옮기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괌 사령부 기능을 하와이에 있는 히캄 기지로 통합하기로 했다. 단, 미 공군과 일본 항공자위대의 통합작전능력 향상을 위해 항공자위대 사령부는 요코다기지로 옮기기로 했다.
조 센터장은 "이처럼 미일간의 임무와 역할분담 협상은 일본의 완강한 자세로 미국이 요구했던 '전략적 유연성'이 관철되지 못한 채 끝났다"고 분석했다.
세계 최초로 '전략적 유연성' 확보한 주한미군 기동부대
그는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동아시아안보회의에서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오노 요시노리 일본 방위청 장관에게 '일본이 역할확대보다 분담축소만 꾀한다'며 불쾌감을 표했다"며 "럼즈펠드 장관이 애초 지난해 한미 연례안보회의(SCM)에 참석한 뒤 중국 방문 계획을 갑자기 바꿔 일본을 방문대상에서 제외시킨 것도 불만의 표시였다"고 분석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일본과 정반대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004년 3월 공사 졸업식 연설에서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이에대해 보수진영이 한미동맹 이상론을 제기하며 대단히 큰 논란이 벌어졌다. 이에 우리 정부는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며 논쟁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실제 진행과정은 이런 표면적인 논란과는 상당히 달랐다.
한국은 지난 2002년 말 또는 최소한 지난 2003년 6월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FOTA)회의에서 '동맹의 강화'(Enhance)·조성(Shape)·조정(Align)'의 3원칙에 동의함으로써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의 내용을 대부분 합의해줬다.
올 1월 한미 양국 외무장관 회담에서 한국은 전략적 유연성을 공식 인정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이미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주한미군 기지의 이전 및 재배치는 지난 2004년 6월 이미 한미간에 합의가 끝났다.
조 박사는 "주한미군은 지난해 6월에 해외 미군 가운데 최초로 미래형 사단인 '운용부대 X(UEx)'로, 예하 1여단도 새로운 편제인 '작전부대'(UA)로 개편을 완료해 신속 기동군 체제를 갖췄다"며 "주한미군이 이미 전략적 유연성에 알맞은 형태로 바뀐 마당에 새삼스럽게 올 1월 한미 전략회의에서 이를 받아들인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은 앞뒤가 바뀐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부 언론의 과장·왜곡보도가 가장 큰 원인
한국과 일본은 협상 틀에서도 차이가 났다.
미일간의 협상주체는 국방장관과 외무장관이 동시에 참여하는 전략대화 성격의 '안전보장협의위원회'(SCC)였다. 그러나 한미는 국방장관이 참여하는 '안보협의회회의'(SCM)였다. 즉 미일간에는 안보전략 차원에서 주일미군 재편논의가 진행됐지만 한미간에는 그 하위인 군사전략 차원에서만 주한미군 재편논의가 이뤄졌다.
그동안 국내 언론들은 주일미군의 재편은 미일간에 아주 원만하게 이뤄졌지만 주한 미군 재편은 이견과 갈등이 많았던 것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내용을 뜯어보면 미일간에는 오히려 심각한 이견이 있었고 주일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오키나와 미 해병대의 기지이전 문제는 사실상 미국 주장이 관철되지 못했다.
반대로 한미동맹이 깨지고 미군 철수로 이어질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던 주한 미군 재편은 전략적 유연성이 수용되는 등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주한미군의 철수나 지위강등은커녕 전력보강과 4성장군 사령관의 유지 등 세계최초의 유동군(기동군)으로 거듭나게 됐다.
조 센터장은 "이처럼 겉모습과 실제 협상 내용이 다른 것은 일부 국내언론의 과장·왜곡 보도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며 "여기에 국내 많은 전문가들이 전략적 유연성을 비판하는 견해를 마치 국제정세의 흐름도 모르는 단견으로 치부해 버린 탓도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