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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사태 속 캐스팅보트 쥔 러시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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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성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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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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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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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사태 속 캐스팅보트 쥔 러시아"
'천안함 위기' 조정과정에서 나타난 러시아의 입장과 그 의미
10.09.15 20:21 ㅣ최종 업데이트 10.09.15 20:21 코리아연구원 (knsi)
지난 7월 9일 유엔 안보리가 천안함사태에 대한 의장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천안함사태로 인한 한반도 위기상황이 그간 남북관계의 악화와 중미 간의 일시적 긴장에도 불구하고, 이제 대체로 진정국면에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두 달 전 이른바 관련국들은 안보리 의장성명의 내용에 대해 대체로 환영하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똑같은 문안을 두고도 그 해석에 있어서는 뚜렷한 차이를 드러낸 바 있었다. 한국과 미국정부는 의장성명을 북한의 천안함 공격에 대한 안보리 차원의 규탄으로 받아들인 반면, 북한 정부는 그것을 자신들의 '외교적 승리'로 규정했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과 러시아는 조심스럽게 관련국들의 지속적인 자제와 6자회담 재개를 호소했다.
사실 당시의 성명 내용은 지난 6월 초 안보리 회부 당시 한국과 미국정부가 취했던 강경한 입장에 비해, 그다지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다. 또한, 전체적인 문맥을 살펴보면, '외교적 승리'라는 극적인 표현 역시 북한이 흔히 사용하는 일종의 과장어법에 불과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 달 간의 진통 끝에 탄생한 안보리 의장성명이 '언어공학(language engineering)이라는 조소를 들을 만큼 교묘한 단어 선택 및 문장 배치를 이용하여 모든 관련국을 어느 정도 만족시켰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것을 계기로 천안함사태로 조성된 한반도 위기상황이 진정될 수 있었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러한 안보리 의장성명이 한국, 미국과 중국의 입장이 절충된 결과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러시아가 수행한 촉매 역할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러시아의 조사단 파견 배경과 결론, 그리고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러시아의 기본적인 시각을 분석함으로써 천안함 위기 조정과정에서 나타난 러시아의 입장과 그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Ⅰ. 러시아는 왜 조사단을 보냈는가?
합동조사단 조사결과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고 있던 지난 5월 말, 국내외 언론의 관심이 갑자기 러시아 전문가그룹의 한국 방문에 집중되었다. 약 일주일 후 러시아 조사단은 합동조사단의 결론에 대한 의구심과 부정적인 평가를 언론에 흘리면서 조사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인 7월 초 러시아 정부가 합동조사단의 결론과 상반되는 자체 조사결과를 관련국들에게 통보했다는 주요 언론의 보도가 있었고, 공교롭게도 이어서 안보리 의장성명이 극적으로 합의되었다.
러시아가 조사보고서를 여전히 일반에 공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직 세세한 내용까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함정 외부 수중 폭발을 침몰 원인 중 하나로 볼 수 있지만, 그것이 북한의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확증은 없다"는 식의 결론을 내린 것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러시아 측의 결론은 7월 9일 채택된 안보리 의장성명에 거의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성명에는 천안함이 공격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개탄(deplore)'과 함께, "이에 대한 책임이 북한에게 있다는 합동조사단의 결론"이 명시되었지만, 동시에 "이와 관련이 없다는 북한 및 여타 국가들의 반응에도 유의(주목)한다(takes notes)"는 내용까지 포함되면서 결국 그것이 북한의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어떠한 단정도 내려지지 않았다.
사실 러시아 조사단의 결론은 국내외 러시아 전문가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예견된 내용이었다. 순수하게 기술적인 측면을 논외로 한다면, 러시아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천안함 침몰을 북한의 공격이라고 확증할 수 없다"는 정도의 제한적인 내용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입장은 러시아 조사단이 귀국한 지 10일 후에 있었던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의 메드베데프 대통령 인터뷰에서도 이미 감지된 바 있다. "북한의 어뢰에 의해 천안함이 파괴되었다"는 주장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메드베데프는 "그것이 단일한 주장은 아니다. ... 하나의 주장이 널리 유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즉시 모든 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 최대한 면밀한 조사가 수행될 필요가 있고, 그 결과가 명백할 때 ... 처벌과 책임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미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에게도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적극적으로 설명하여 그들의 지지를 끌어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나란히 신중한 입장을 취하며, 섣부르게 어느 한쪽을 지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두 나라의 행보는 결코 동일하지 않았다. 중국은 "누구도 비호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합동조사단의 결론을 무시하려는 듯 한 인상을 주었지만, 러시아는 관련 자료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자신의 전문가그룹까지 파견하면서 독자적인 행보에 나섰다.
지난 5월 25일 이명박 대통령과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전화통화 내용과 5월 26일 한반도 상황에 대한 크레믈린 성명에 따르면, 러시아 조사단이 서울로 급파된 배경에는 우선적으로 러시아의 적극적인 지지를 끌어내려는 한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는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와 관련 자료를 제공하고, 단독 조사단을 받아들이겠다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한 것이다.
또 하나의 배경을 언급하기에 앞서 천안함사태가 러시아에게 있어 얼마나 중대한 결단을 요구하는 문제였는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처럼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의도적으로 무시할 경우, 북한과 중국 간 혈맹관계의 그늘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지도 못하고 한국을 비롯한 다른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마저 서먹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에 전적인 신뢰를 보일 수도 없었다. 그것은 한반도 긴장 고조와 대북 압박에 대한 동참으로 간주되어, 2000년 새로운 우호친선협력 조약 체결 이후 지난 10년 간 공들여온 북한과의 우호관계를 손상시킬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한반도 문제 논의에서 이른바 '선의의 중재자'로서 자신의 지위마저 위태롭게 만들 수 있었다.
이에 러시아는 전문가그룹 파견을 통한 독자적 조사 수행으로 중국처럼 합동조사단의 결론에 대한 의도적 무시도, 다른 서방 국가들과 같은 전적인 신뢰도 아닌, 보다 중립적이고 타협적인 입장을 모색하게 되었다. 물론 천안함사태가 갖는 정치적 의미를 고려할 때, 결론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자체 조사결과에 기초한 입장 표명의 기회는 관련국들 간의 대립 속에서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쥐는 것일 수도 있었다.
또한, 조사단의 결과보고까지 입장 유보를 선언함에 따라 관련국들에게 일정한 냉각기를 제공하면서 사태의 추이를 주도면밀하게 관망할 수도 있었다. 따라서 조사단 파견은 이른바 동북아와 한반도의 지정학적 게임에서 미국, 중국보다 약한 영향력을 가진 '와일드카드(wild card)' 러시아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옵션이었다.
Ⅱ. 천안함사태를 바라보는 러시아의 기본적인 시각
지난 5월 20일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에 관한 외무부 대변인 네스테렌코(A. A. Nesterenko)의 논평 이후 크레믈린과 러시아 외무부의 성명 및 주요 인사들의 발언을 살펴보면,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와 북한의 주장이 거의 동등한 비중으로 언급되면서, 관련국들의 자제와 신중함이 강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러시아 조사단이 서울에 도착한 당일 외무부 차관 보로다브킨(A. N. Borodavkin)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11차 한러포럼에서 "모든 관련국들이 한반도에서 향후 긴장 고조 방지를 위해 자제와 인내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군사 분쟁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 이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호소했다.
또한, "천안함 비극이 6자회담 전면 거부의 원인이 되는 것을 용인해서는 안 되며", "6자회담 프로세스는 한반도에서 예기치 않은 대결행위와 긴장 고조를 방지하는 효과적인 보호 메커니즘"임을 강조했다. 지난 6월 18일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과의 인터뷰에서 메드베데프 역시 "북한과 소통하는 것이 어렵더라도, 그들을 구석으로 몰고 그것이 어떠한 부적절한 행위를 도발할 수준까지 상황을 끌고 가서는 안 된다"며도발할 수준까지 상황을 끌고 가서는 안 된다"며, "만약 그러한 불균형적인 입장을 취한다면, 그것은 아주 극히 위험한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러시아가 볼 때 천안함사태의 근본 원인은 어느 누군가에 의한 갑작스러운 공격이 아니라, 한반도의 항상적인 긴장과 대결에 있었다. 따라서 그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 역시 당연히 향후 긴장 고조를 방지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조속히 재개하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의 이러한 입장은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 직후인 7월 10일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 논평에서 간명하게 확인된다.
논평에는 의장성명 채택을 환영하면서, "안보리 결정이 한반도에서 긴장의 조속한 완화, 남북 대화와 상호협력의 복원, (러시아가 주도하는 실무그룹의) 동북아 평화 및 안보 메커니즘 형성 작업으로의 복귀를 포함하는 남북한과 관련국들의 6자회담 재개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가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이 2000년 푸틴 정부에 의해 공식화된 "남북한과의 균형적 관계 유지", "평화적인 방식에 의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대 한반도 정책기조의 연장선상에서 나왔다는 것 또한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천안함사태에서 러시아의 입장과 자체 조사단 파견은 한반도의 긴장 고조를 방지하고 안보리 차원의 해법을 찾는데 기여했다고 여겨진다. 한반도 위기상황에서 끝까지 냉정함을 유지한 것은 유감스럽게도 한국이 아니라 러시아였다. 북한을 구석으로 몰아붙이려던 한국, 미국, 일본, 그리고 북한과의 관계로 인해 운신의 폭이 좁았던 중국 사이에서 러시아는 사태 수습을 위한 건설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지난 2003년 핵 문제 해결의 목표와 경로를 담은 '일괄타결안'을 제안하여 6자회담과 2005년 9.19 공동성명의 기초를 마련했듯이, 이번에도 조사단 파견으로 천안함 위기에서 벗어날 해법을 제시하여 관련국들 간의 극적인 타협을 이끌어냈다. 이것이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과 항구적 평화를 향한 험난한 도정(道程)에서 여전히 우리가 러시아의 입장과 역할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2010/09/16)
덧붙이는 글 | *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www.knsi.org)에서 원문 및 다양한 정책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 코리아연구원(원장 박순성)은 정치·외교, 경제·통상, 사회통합 부문에서 정책대안 및 국가전략을 제시합니다. 홈페이지 및 전화(02-733-3348, knsi@knsi.org)로 코리아연구원 후원이 가능하며, 후원회비 및 기부금은 기획재정부의 공익성기부금으로 인정되어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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